‘가장 가까운 나라’로 만들어 가는 풍요로운 기회
강 주교의 언급처럼 교류모임 주제는 역사 문제뿐만 아니라 선교사목 문제, 교회의 소명과 자살 문제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됐다. 강 주교는 “양국 주교들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핵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핵발전의 중대한 위험성과 한계를 공유하고 교회의 대응 방안을 함께 추구했다”며 “또한 갈수록 우경화되는 정치적 풍향과 국가주의적 추이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적 정의를 추구하며 오늘날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세력에 대응해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 왔다”고 밝혔다.
개최지도 서울과 도쿄라는 수도 교구에서 벗어나 각 지역 교구로 확대됐다. 마쓰우라 고로 주교는 “제6회 교류모임부터 지역 교구를 방문하고 그곳의 문화와 사람들의 생활까지 접할 수 있어 한일을 ‘가장 가까운 나라’로 만들어 가는 풍요로운 기회가 됐다”고 전했다.
교류모임의 형태도 회를 거듭할수록 발전해 갔다. 서울대교구와 수원교구 소공동체 모임을 탐방한 제8회 교류모임에서는 신자들도 처음 미사를 함께 봉헌했다. 마쓰우라 고로 주교는 “양국 신자들은 우리 교류모임을 매우 기쁘게 지켜봤고, 실제로 신자들 간 교류로 이어진 것은 큰 결실이라 생각한다”며 “교류모임 이후 한국의 많은 신자가 나가사키를 순례하고, 나가사키대교구도 수원교구의 소공동체 실천에 자극을 받아 활동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한국교회의 파견 사제는 ‘화해의 징표’이자 양국 간 ‘가교’
고(故) 경갑룡 주교(전 대전교구장)의 제안으로 시작된 한국교회의 사제(신학생) 파견도 교류모임이 맺은 대표적인 성과다. 강 주교는 발표의 많은 부분을 할애해 태평양전쟁 말엽 15세였던 경 주교가 징용령으로 공장에 동원됐다 손가락을 크게 다친 이야기를 소개하고, 평생 일본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던 경 주교가 오랜 고심 끝에 화해를 결심하고 그 방법으로 사제 성소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오이타교구에 신학생 파견을 제안한 일화를 소개했다.
강 주교는 “이때 2명의 대전교구 신학생이 후쿠오카 신학교에서 2년의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사제로 서품돼 오이타교구에서 사제생활을 시작했다”며 “이를 계기로 양국의 다른 교구에서도 성소의 나눔이 차츰 증가했으며, 이 에피소드는 교류모임 25년 역사가 맺은 하나의 작은 열매”라고 전했다.
마쓰우라 고로 주교도 “경 주교님께서 일본의 상황을 존중해 주시고 무엇보다도 사제 파견을 ‘화해의 징표’로 제안해 주셨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올해 1월 진행한 수품 5년 전후 사제 양성 과정에 참가한 22명의 사제 중 3분의 1인 7명이 한국인 사제였으며, 함께 일한다는 것을 통해 각자가 깨닫고 배우면서 양국의 가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전했다.
“주교들은 화해의 여정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한일 양국의 주교들은 과거의 아픈 기억을 딛고 미래를 향한 화해와 일치의 여정을 시작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강우일 주교, 한일주교교류모임 25주년 기념 자료집 중)
용기를 내어 시작한 교류모임은 사반세기 동안 친교와 일치의 여정으로 자리매김해왔다. 한일 주교들은 이를 발판으로 화해의 길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야말로 분열 상태에 있는 세계 속에서 화해의 길을, ‘인류 일치의 표징이자 도구’라는 교회의 사명을 다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마쓰우라 고로 주교는 “양국 간 정치적, 사회적 문제가 일어나고 반드시 역사 문제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화해’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그때야말로 한일 양국 주교들은 ‘화해의 여정을 계속하고 있음’을 교회 안팎에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