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유엔 본부에서는 ‘핵무기금지조약(Treaty on the Prohibition of Nuclear Weapons, TPNW) 제2차 당사국 회의’가 열렸다. 유엔 주재 교황청 대표 가브리엘 카치아 대주교는 전체 토론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핵무기금지조약은 ‘핵무기 없는 세상’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상기시키고, 대화를 통해 이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이 조약의 조항들이 군축 윤리를 수반하지 않는다면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러한 윤리적 접근은 ‘억지력의 위태로운 균형’에 기반한 안보의 소극적인 개념을 ‘우리를 하나로 묶는 형제애에 기초한’ 안보의 적극적인 개념으로 대체하는 ‘도덕적 혁명’을 가져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2021년 발효된 핵무기금지조약은 일부 강대국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는 핵확산금지조약(NPT)과 달리 핵무기를 전면 금지하는 조약이다. 핵무기나 핵폭발장치를 개발, 실험, 생산, 제조, 획득, 보유, 비축, 이전, 사용 또는 위협하는 것, 영토에 핵무기나 핵폭발장치의 주둔, 설치 혹은 배치를 허용하는 것, 그리고 핵무기 관련 활동에 참여하도록 지원하거나 촉진하거나 유도하는 것을 포괄적으로 금지한다.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교황청은 핵무기금지조약에 가장 먼저 서명한 국가 중 하나다. 교황청 외무장관 폴 리처드 갤러거 대주교는 2017년 9월 뉴욕 유엔 본부에서 핵무기금지조약에 서명했다.
2023년 11월 현재 전 세계 93개국이 핵무기금지조약에 서명했고 그 가운데 69개국이 비준했다. 하지만 한반도와 주변 국가들에서는 이 조약에 대한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휴전선을 경계로 대치하고 있는 한·미·일과 북·중·러 6개국 가운데 미·북·중·러 4개국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나머지 2개국인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에 의존하고 있다. ‘비핵화’라는 희망에서 멀어진 한반도는 전형적인 안보 딜레마에 빠져들었는데, 최근에는 우발적인 충돌을 예방하기 위한 군사 합의까지 파기하고 말았다.
북한과 한미 연합이 상대방을 향한 ‘선제공격’ 전략을 공언하는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현재 한반도를 지구상에서 핵전쟁의 위협이 가장 높은 지역 가운데 하나로 분류하고 있다. 아무리 멀고 험해도 ‘적극적인 안보와 평화’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