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로 체험한 하느님 현존, 매일 그림으로 봉헌
타성적 기도 스스로 다잡고자
2000년부터 그림과 시로 표현
2년 전부터는 SNS 통해 나눔
“영적 생명력 키우는 필수 작업”
배영길 신부(베드로·예수회)의 인스타그램(@baeyounggil)에는 성경 구절과 시가 어우러진 그림이 한 장씩 매일 게재된다. 배 신부가 매일 복음과 기도 묵상 중 성찰한 내용을 토대로 직접 노트에 쓰고 그린 시와 그림들이다.
배 신부는 타성적으로 기도하던 스스로를 다잡고자 2000년부터 그림과 시로 기도 묵상을 표현해 왔다. 그가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것 자체가 수도자로서 최소한의 기도”라고 밝히는 이유는 “스스로 얼마나 빠짐없이 기도하는지 반성할 지표가 될뿐더러 저와 하느님이 함께 걸었던 증거물이 되기 때문”이다.
“기도 이미지는 제가 아니라 하느님이 보여주십니다. ‘내가 기도했구나’가 아니라 ‘그분께서 내 기도에 함께했구나’라는 현존 체험으로 기도가 발전할 수 있죠.”
예수회원들 누구나 매일 기도와 성찰을 하고 사진, 작곡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기도 성찰을 표현하지만, 배 신부는 그림을 표현 방법으로 택했다. “성찰록을 읽는 건 그날의 생생한 묵상 현장으로 돌아가기 어렵지만, 그림을 보는 건 그날의 기분과 느낌까지 그대로 펼쳐 보여주기 때문”이다.
배 신부는 “그림에 담기는 묵상 현장은 일상 속 내면에 다가오는 작은 것들”이라고 말한다.
어느 날 길에서 마주친 행인의 비스듬히 많이 닳은 신발 이미지는 관상 속에서 “우리는 어디로 달려가고 있는가”하는 묵상 주제로 이어졌다. 어렸을 적 서예를 배워 익숙한 먹물, 동양화 물감처럼 동원하는 화구들이 일상적인 것도 이처럼 “평범한 삶 속에서 뜻밖의 영적 울림이 되는 요소들의 소소함을 담아내기 위해서”다.
배 신부는 더 많은 사람들의 기도 묵상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2022년부터 SNS를 통해 자신의 그림들을 저작권 등록 없이 나누고 있다. 그의 그림을 활용한 묵상 동영상이나 배경 음악이 어우러진 말씀 카드를 만들어 주변 사람들과 공유하는 이웃들의 재창작 활동은 배 신부를 미소 짓게 한다.
교리적 내용을 신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입하기보다 자신의 진솔한 신앙 체험을 시각적으로 나눌 수 있기에 배 신부는 “피정 자료로도 그림들을 자주 동원하게 된다”고 말한다.
“제가 기도하고 느낀 하느님으로 이야기를 꾸려 강의해 나가는 것에 신자분들이 신선함을 느끼고 호응해주실 때 저도 힘이 많이 난답니다.”
지난해 2월부터 아동보육시설 꿈나무마을 연두꿈터 부원장으로서 “아이들의 천진함과 아픈 과거를 묵상하며 하늘과 사람 모두를 향한 사랑으로 기도가 나아갔다”는 배 신부. 그는 “이런 기도를 삶으로 살아내고자 스스로 다잡는 작업으로서도 묵상과 그림 그리기에 임할 것”이라고 전했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부으면 거의 대부분이 밑으로 빠집니다. 어차피 다 빠질 물을 왜 붓나 싶겠지만 그런 노력이 콩나물의 성장에 꼭 필요한 작업이 되죠. 묵상과 그림 그리기가 영적 생명력에 물을 주는 작업인 만큼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