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책방에 갔다가 만난 시입니다. 시 한 편, 또는 필요한 한 줄이 있어도 웬만하면 책을 삽니다. 그런데 그날은 그만 시를 외웠습니다. 사실 한 페이지 살짝 핸드폰으로 사진 찍을까 하는 유혹이 있었는데,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책과 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물론 책을 사지 않고 그 시만 외워 온 것도, 사실 책 도둑과 마찬가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만…. 어쨌거나 이 시를 외우며 생각해 보았습니다. 보통은 장미꽃에 가시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름다운 장미만 바라보다가 가시에 따끔함을 느끼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름 모를 시인은 다르게 바라봅니다. 가시나무에서도 장미꽃이 핀다고 합니다. 가시처럼 따끔한,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한 여러 일, 상황, 관계 속에서도 결국에는 아름다운 장미가 피어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듯합니다. 눈앞에 있는 가시에만 시선과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나 자신과 주변을 다시 한번 돌아보면서, 아름다운 장미꽃이 ‘곧’ 핀다, ‘꼭’ 필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는 시인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저는 지난 사순 시기 때 어떤 꿈을 꾸었는데, 부활 시기에 뜸하다가 요즘 한두 번 다시 꾸었습니다. 꽤 낯선 곳에 가서 길을 잃는 꿈, 그래서 아무리 찾고 찾아도 같은 자리를 맴돌 뿐 가야 할 길을 찾을 수 없는 그런 상황, 또는 미사 봉헌처럼 늘 해오던, 그래서 매우 익숙한 일인데도 웬일인지 어색함을 느끼고, 어느 순간 방법을 잊은 듯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는 꿈, 그런데다 꿈인 것을 아는데도 깰 수 없어서 더 힘든 그런 꿈…. 아마도 생각건대, 그 시기에 앞으로 다가올 것으로 예상되는, 예정된 일들에 대해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걱정되기도 하고 긴장이 되었나 봅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기에 기존에 잘해오던 일들도 빈틈, 실수가 생기고 짜증스런 마음도 컸던 듯합니다.
하지만 제가 지금 계속 그런 마음과 힘든 관계에 머물러 있을까요? 결론적으로는 늘 품고 산다고 했지만 잠시 잊었던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14,27)는 예수님 말씀과, 훔친(?) 시를 다시금 떠올리면서 이런저런 고민을 좀 내려놓습니다. 내려놓으려 합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 중에 나쁜 것은 없으니, 저를 둘러싼 환경은 모두 이미 좋은 계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 계절을 대하는 제 마음이 힘들었을 뿐. 그러니 이 좋은 계절에 뭘 그리 끙끙거리겠습니까? 분명 필, 피고야 말 장미꽃, 그것도 아름다운 장미꽃을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그저 다가오는 순서대로 행동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실까요? 유월, 이 좋은 계절에 무엇을 걱정하십니까? 우물쭈물 망설이는 일이나 마음이 있으십니까? 무작정 아무 대책 없이 좋은 생각만 하여 정신 승리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다시 새롭게 하며, 기도 안에서 움직여 봅시다. 뭐라도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움직여 봅시다. 너무 걱정하며 실망하지 말고, 또한 쉽게 주눅 들고 포기하지 맙시다. 그러면 나쁜 것에서도 좋은 것을 끌어내실 수 있는 하느님께서는 분명 좋은 것으로 대답해 주십니다. 가시나무에서조차 피어 나는 아름다운 장미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