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만난 것은 관상기도 모임에서였다. 얼마 전, 미사가 끝나고 나오는데, 그가 아는 체를 했다. 오랜만이었다. 어떻게 지냈냐고 물었다. “남편과 헤어지려고요.” 내밀한 가정사를 나눌 만큼 친하지 않은 사람이 불쑥 이런 말을 건네면 당황스럽다. “자매님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주님이 함께하시길 기도할게요.” 진심이었다. 그 후 그를 다시 만났다. 한결 편안해 보였다. 그가 차를 마시자고 했다.
“남편은 알코올중독이에요. 결혼생활은 늘 불안했어요. 괜찮아지는가 싶다가도 다시 나빠지고, 그러면 그는 동굴 속으로 혼자 들어가 버렸어요. 나는 무력하고 우울해졌죠.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이 사람 옆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았어요. 이럴 바에야 따로 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난번에 자매님을 만난 날은 진짜 오랜만에 미사에 온 거였어요. 그날 복음환호송이 ‘오늘 너희는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시편 95,8 참조)였어요.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 하루 종일 맴돌았어요.”
그는 계속 말했다. “그날, 한밤중에 깼는데 남편이 혼자 구석에 앉아 있는 거에요. 평소라면 이 지겨운 반복이 짜증스러웠을 텐데 이날은 곁에 가서 앉았어요. 그가 자기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상처와 두려움, 죄의식과 수치심에 대해서요. 이미 들은 이야기였지만, 마치 처음 듣는 것 같았어요. 나는 한 가지 생각만 했어요.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이날 남편은 그동안 묻어두었던 심연의 어두움을 드러내고 오열했어요. 동이 틀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어요. 아침이 되었을 때, 성당과는 담을 쌓은 지 수십 년인 남편이 말했어요. ‘우리 같이 기도할까?’ 나중에 남편에게 물어봤어요. ‘그날, 우리 관계 회복과 화해의 비밀은 무엇이었던 것 같아?’ 그는 내가 자신의 상처를 진심으로 이해한다고 느꼈대요. 그리고 제게도 되물었어요. 나는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이 생각만 했어.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그러니 당신이 겪은 고통이 보이더라.’ 우리는 함께 살아보기로 했어요. 매일 아침 저녁으로 같이 기도해요. 기적같아요.”
그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화해와 평화의 시작은 우리 마음을 무디지 않게 하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새로 시작하는 두 사람의 영혼에 주님이 늘 함께하시길 기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