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성미술 작가 다이어리] (7) 강희덕 작가

입력일 2024-02-13 수정일 2024-06-04 발행일 2024-02-18 제 3380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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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제 뒤에서 보살펴주는 위대한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생각·마음 담은 행위의 표현인 
‘손’ 주제로 다양한 작품 선보여 
마음가짐부터 달라지는 성미술 
사람들 의견 묻고 수용하며 작업
강희덕 작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미술 세계로

저는 오랜 구교우 집안에서 자랐어요. 아버지께서는 가톨릭신자니까 가톨릭계 학교로 가야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고(故)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께서 교장으로도 계셨던 성의중고등학교에 입학했어요. 그런데 중학교 다닐 때 제가 미술로 진로를 정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생겼어요. 당시 서양화가로 유명한 유희영 화백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학교 미술교사로 왔어요. 선생님은 반장 부반장들을 모두 미술반에 들어오라고 했지요.

저는 어릴 적부터 그림을 곧잘 그렸어요. 미술대회에 나가면 계속 1등을 했고요. 건방진 이야기지만 다른 친구들은 미술대회에 나간다고 하면 한 달을 앞두고 훈련하는데, 저는 하루나 이틀 정도만 준비했어요. 그래도 1등이었죠. 그만큼 노력을 안 했어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사람들은 밤을 새워서 작업도 하는데, 저는 건강 때문에 10분 작업을 하면 한 시간을 쉬어야 해요. 그런데도 실패하지 않고 지금까지 작품활동을 하는 것은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림은 그저 취미로만 그리고 미술대학으로 진학할 생각은 없었지만 유희영 선생님의 영향으로 미술대학에 가기로 했어요.

 

수원교구 태평동성당 외벽에 새긴 성프란치스코 부조.



 


우연히 발견한 조각가로서의 재능

그렇게 미대 진학을 결심하고 응용미술학과를 지망했어요. 장래성이 좋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응용미술학과는 떨어지고 2지망으로 지원한 조소과에 합격했어요. 2학년이 되면 응용미술학과로 전과할 생각으로 첫 학기 수업을 듣는데, 데생은 김태(바오로) 교수님이, 조각은 최의순(요한 비안네) 교수님이 지도해 주셨어요. 수업을 들으며 이런저런 작품을 만드는데, 제가 곧잘 했어요. 친구들이 이것저것 도와달라기도 했고요.

그렇게 전과를 포기하고 2학년이 됐는데, 송영수(미카엘) 교수님께서 자기 작품을 만드는 걸 도와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교수가 작품을 만드는데 아무에게나 부탁하지는 않을 것 아니에요? 그렇게 교수님을 도와드리면서 저도 많이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조각이 나름대로 제 적성에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손을 주제로 작품을 많이 했어요. 생각과 마음을 담아서 실제로 행동을 하는 것은 손이기 때문이죠. 저는 손으로 무엇을 했다는 것은 행위를 했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또 손을 빌어서 무엇을 빚는다는 것은 결국 창조의 근원은 손이라는 말도 되고요. 젊었을 때 ‘치유’ 시리즈 작품을 많이 했는데, 어떤 선생님께서 ‘여기에 십자가만 표현하면 성미술이네’라는 표현을 많이 해주시기도 했고요. 이런 작품들에는 가톨릭신자로서 저의 내면이 어느 정도 담겨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성미술 작품을 할 때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많이 듣는 편이에요. 다른 작품을 할 때에는 저만의 생각을 담아 만들면 그만이지만, 성미술을 할 때에는 마음가짐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예수님이나 성모님의 형상을 빚을 때 내가 보지 못하는 다른 사람의 눈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성미술을 할 때에는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 보여주며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봐달라고 요청하죠. 좀 더 겸손하게 신심을 가다듬고 기도하며 만들어요.

이런 객관적인 다른 사람의 눈이 필요하다는 것은 부모님과 할머니 덕분이에요. 그림을 보실 줄 모르셨던 분들에게 제 그림을 보여주면 ‘색칠 하기 전이 낫다’, ‘지난번보다 이번이 더 낫다’ 이렇게 평가를 해 주셨어요. 그때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는 것이 내가 혼자 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완성으로 향하는 노작가

미켈란젤로와 같은 대가도 시스티나 경당 천장 벽화를 그리면서 내려올 때 ‘나는 아직도 배운다’고 그랬습니다. 그런 대가도 죽을 때까지 배웠어요. 천재 음악가도 있고 천재 운동선수, 천재 과학자도 있지만 천재 화가라는 말은 잘 못 들어보셨을 거예요. 우리는 죽을 때까지 배우지만 어떤 의미로 보면 미술은 더 그런 것 같아요.

미술은 하느님의 창조 사업과 비슷한 거라고 생각해요. 더군다나 조각이라는 게 하느님께서 세상과 사람을 만드신 것과 같이 ‘만드는 것’이니까요. 결국 우리는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지만, 머리와 가슴, 손 이렇게 세 가지가 일치되지 않으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없어요. 나이가 들면 원숙해 지지만 눈이 보이지 않으면 그릴 수 없고, 손이 떨리면 붓을 놓아야 해요.

어떻게 보면 저는 아무 계획 없이 살아왔어요. 참으로 운 좋게 지금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제가 운이 좋다는 것은 어떻든 제 뒤에서 보살펴주는 위대한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보이지 않는 손이 도와주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별 문제 없이 살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조각가로서 죽을 때까지 배우고 연마하고 노력할 수밖에 없어요. 다른 의미로는 죽을 때까지 조각을 할 수 있으니 참으로 좋은 몫을 선택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약속의 손.



 

수원교구 일월성당 수태고지 성모상.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선물로 제작한 ‘세 교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