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99% “우리는 감정노동자”… 교육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교사 개인에게 책임 맡긴 시스템
학부모 민원·과중 업무 시달려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숨진 이후 진상 규명과 교육권 보장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가 매주 토요일 열리고 있다. 7월 22일 추모 열기로 시작한 집회는 서이초 교사 49재인 9월 4일 집단으로 수업을 멈추는 공교육 멈춤 행동, 국회 앞에서 교권 보호 입법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로 이어질 전망이다.
교사들은 어떤 본질적 문제에 분노하고 있으며, 주말마다 점점 더 큰 규모로 모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분인 교육보다 감정노동에 시달려온 교사들의 현실을 집회 현장에서 알아보고, 부모와 교사, 가정과 학교, 사회가 함께 힘을 모으는 교육 공동체의 가능성을 생각해본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현장
8월 12일 오후 2시, 서울 종각역부터 을지로입구역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위아래 검은 옷차림을 한 인파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집회 측 추산 3만5000여 명, 제4차 ‘안전한 교육환경을 위한 법 개정 촉구 집회’를 위해 모인 교사들이 이룬 검은색 추모 물결이었다.
“어린 꽃 진 그늘의 빛깔, 우리 검은 옷 입고 이 길 위에 섰네.”
집회는 사망한 호원초 교사 2명과 서이초 교사를 추모하는 묵념으로 시작됐다. ‘아동복지법 개정’, ‘생활지도권 보장’이 적힌 피켓을 든 교사들은 태풍 여파로 집회 내내 비가 쏟아져도 우비와 우산 차림으로 침묵을 지켰다. “뒤에 앉은 참여자들 시야를 배려해 우산을 되도록 접어달라”는 주최 측 부탁으로 우산을 펴지도 못하고 비를 맞는 참여자도 있었다.
“서이초 선생님 죽음은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아녜요. 사실 다들 참고 있던 이야기죠.”
빗물 고인 아스팔트 도로에 줄지어 앉아 비를 맞으며 ‘아동학대 관련법 개정, 국회는 행동하라’, ‘일원화된 민원창구 마련하라’ 등 구호를 외치는 교사들. 그들이 이날 불편을 감수하고 집회에 나온 것은 그간 법의 사각지대를 악용한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과 비교하면 이 정도 불편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서이초 가해 학부모를 공개하라!”는 몇몇 참여자들의 돌발 선창에, 교사들은 분노를 실어 “공개하라!” 삼창으로 화답하기도 했다.
집회는 교육권 훼손이 교사들만의 문제가 아닌 학생들의 문제이기도 함을 보여줬다. 교실 붕괴 경험을 나눈 고등학생 2명의 자유발언을 통해서였다. 두 학생은 “교권 침해 문제는 다수 학생이 안전한 환경에서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문제 학생들은 선생님이 말로 주의를 주면 정서적 학대, 제지하고자 손을 잡으면 물리적 학대라고 합니다. 문제 학생들 때문에 수업 분위기도 엉망이 되고, 학생들은 조롱당하는 선생님을 보며 무기력해지고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합니다.”
교사들과 연대하는 마음으로 정당한 교권 회복을 외치는 학생들 목소리에 몇몇 교사는 눈시울을 붉혔다. 집회를 위해 이른 아침 버스로 상경한 대구 수성구 초등학교 교사 A씨는 “학생들 권리를 제한하려고 집회에 참여한 게 아니다”면서 “교사와 학생들 신뢰를 되돌리는 공교육 정상화가 목표”라고 강조했다.
교사들의 바람
“더 이상 가르치는 일의 의미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행정보다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을 우선할 수 있도록, 갑질과 민원이 아닌 소통의 학교를 만들어 가길 원합니다.”
빗속에서 무려 2시간이나 자리를 지킨 교사들이 바라는 것은 생존권 보장에서 나아가 정당한 교육 활동의 발목을 잡지 않는 권리 보장, 법 개정이었다.
교사들이 매주 토요일 거리로 나온 이유는 이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한국교총), 교사노동조합연맹,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새로운학교네트워크, 실천교육교사모임, 좋은교사운동 6개 교원단체가 발표한 공동결의문에 담겨 있었다. 결의문은 ▲아동학대 관련 법률 즉각 재정비 ▲민원창구 일원화와 악성 민원 방지 방안 마련 ▲교사의 실질적 생활지도권 보장 ▲학급 내 정서행동 위기학생 지원책 마련을 촉구했다.
현재의 학교 현장에서는 아동학대 관련 법안이 무분별하게 적용돼, 교사는 실질적 생활지도권을 보장받지 못한다. 그 결과 문제 학생을 교육할 수도, 교실에서 분리시킬 수도 없어 교육 붕괴를 초래, 교사 자신은 물론 다른 학생들도 보호해줄 수 없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민원을 떠맡는 현행 구조도 교사가 수업과 학생 교육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
“교사를 보호하지 않는 학교 시스템을 고쳐야 합니다.”
서울 동작구 초등학교 15년차 교사 B씨는 “갑질 민원과 과중 임무 발생 시 교사가 보호받을 시스템이 없어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것이 근본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어 “교사 개인에게 모든 책임이 기우는 교육계 체질이 개선되지 않으면, 아무리 법이 마련돼도 결국 또 개인이 다 떠맡는 제자리걸음”이라고 전했다.
감정노동자가 된 교사
한국교총이 7월 27일 발표한 ‘교권 침해 인식 및 대책 마련을 위한 긴급 교원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 교사가 스스로를 감정노동자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유·초·중·고 교원 3만2951명을 대상으로 한 해당 조사에서 ‘선생님은 감정노동자’라는 데 전체 응답자 99%가 ‘동의’나 ‘매우 동의’로 답했다.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업무로 46.5%가 ‘생활지도’를, 32.3%가 ‘민원’을 꼽았다. ‘아동학대 신고 두려움’이 14.6%로 세 번째였다. 주로 스트레스를 주는 대상으로는 교사 중 66.1%가 ‘학부모’, 25.3%가 ‘학생’으로 답했다. 교육이 아닌 학부모 불만 관리·처리가 교사의 주된 업무가 돼버렸다는 것이다.
일선 교사들은 서이초 교사 ‘연필 사건’처럼 학생 간 갈등 중재를 가장 어려운 감정노동으로 골랐다. 부모들이 자기 자녀를 편들어주길 기대할 뿐만 아니라 작은 일에도 감정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서울 광진초등학교 22년차 교사 정윤서씨는 “상황을 모르는 채 자기 자녀 입장만 듣고 감정적 언어로 나오는 부모들이 반복된 트라우마를 준다”고 말했다. 정씨는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 상담 시 작은 말도 오해하는 부모들 때문에 사실 그대로 말하기도 조심해야 한다”며 “가해 학생에게는 쩔쩔매고, 피해 학생에게는 미안해 조아리는 형편”이라고 강조했다.
교사에게 모든 일을 떠넘기는 부모들 태도도 교사들 스트레스 원인이었다. 경기도 하남시 초등학교 교사 김모(30)씨는 “아이들 자리 배치도 학부모에게 일일이 보고해야 한다”며 “아이들이 학원에서 있었던 문제나 다른 반 학생들 문제도 교사에게 해결과 책임을 강요하는 부모들도 많다”고 전했다.
감정노동자로 전락해 교육자로서의 본질을 잃은 교사들. 그들은 교사를 보호하는 법적 개선과 시스템 마련이 이뤄져 다시 사명을 다할 수 있기만 바랄 뿐이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초등학교 교사 정모(30)씨는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인 아동기와 청소년기에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게 교사의 소명인데, 자기 보호 때문에 아이들 교육에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심경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