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로 부임한 후 가장 좋은 점이 있다면, 신부들에게도 방학이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교장 신부님은 항시 자리를 지키고 계셔야 하기에 방학이 별 의미가 없을 수 있지만, 교목 신부들은 조금 자유로운 상황에 맞춰 지낼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방학을 기다리는 것처럼 저도 손꼽아 방학식을 기다렸습니다. 학기 중에는 자리를 비우기 어렵기 때문에 동창 신부들 만나는 것도 어려운 일 중 하나인데, 방학 때에는 조금 더 자유롭게 만날 수 있고, 특별히 방학 때에는 늦잠도 조금 더 잘 수 있기에 쉼의 시간이 기다려집니다.
저는 방학 기간 중에는 매일 학교에 출근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방학 중 근무하시는 분들과 식사를 하고 격려하고자 학교에 방문할 때가 있습니다.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시끌벅적하던 학교가 너무 고요하다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시간이 대부분이라 방학을 기다렸지만, 아이들이 없는 학교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없다면 학교도 존재 이유를 잃기 때문입니다. 방학 중 학교에서 느끼는 고요함은 평안함이 아니라 오히려 불안함을 만들어 냅니다.
텅 빈 학교를 한 바퀴 돌며 아이들의 흔적을 찾아냅니다. 방학 전 대청소 때 제대로 청소하지 않아 남아 있던 쓰레기를 발견하기도 하고, 주인을 잃어버린 채 방치되어 있는 체육복들을 보기도 합니다. 사소하지만 아이들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면 비로소 불안한 마음이 조금은 줄어들고, 다음 학기에는 아이들과 어떻게 지낼까를 생각하며 홀로 행복한 상상을 하게 됩니다.
학교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위에서 언급했듯 학생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방학이라는 물리적인 단절이 있을 뿐, 단편적인 흔적들을 발견해나가며 학생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죠. 깨달음은 곧 앞으로 어떻게 더 좋은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고, 그 고민이 실천으로 옮겨질 때 학교는 시끌벅적하고 다사다난하지만, 존재 이유를 충실히 수행하는 곳이 되는 것 같습니다.
텅 빈 학교에서 아이들의 흔적을 발견하고 위안을 얻게 되는 것이 어찌 보면 우리의 신앙 여정과 많이 닮아 있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하느님을 대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분의 흔적과 손길이 서려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때, 우리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힘을 얻습니다. 하느님의 힘을 체험한 사람은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신을 내어 맡기며 그분 뜻에 맞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 결과로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행복을 얻게 됩니다.
텅 빈 교정에서 아이들의 흔적을 발견하고 기뻐하면서 소소하지만 짧은 묵상을 나누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