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진정한 원천은 성령
신자는 세례와 견진 통해 받아
기도 안에서 그의 능력 드러나
초인(超人)을 꿈꾸는 사람들
『신은 죽었다』는 말로 유명한 니체는 초인(超人 슈퍼맨)을 꿈꾸었다. 그 스스로는 이루지 못한 채 정신병에 걸려 초라하게 죽었지만, 오늘날 이 꿈은 많은 사람들의 소망이 되고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고 강한 자, 힘 있는 자가 되고 싶어 한다. 깊이 들어가 보면 이 욕구를 대상으로 해서 돈벌이를 하고 있는 것이 뉴에이지이며 신흥영성운동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도(道)를 아십니까」라는 말로 접근해 오는 대순진리회나 육체적 강건(强健)과 영적 도통(道通)의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꾀는 단월드(Dahn World) 등이 사람들에게서 부추기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초인」을 향한 미련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자기계발, 초능력, 깨달음, 영적 각성, 자아통제력, 창조적 인생(「스스로 자기 인생의 창조자가 되라」) 등 모두가 「초인」의 꿈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해 줄 것 같은 매력적인 상품들인 것이다.
굳이 이런 데에 빠지지 않더라도, 오늘날 사람들은 힘(power)을 생명처럼 여기며 산다. 얼짱?몸짱 문화, 요가 열풍 등도 결국 힘을 향한 원초적 욕구의 다른 표현들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바람 자체를 탓할 수 없다. 본능, 곧 자연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이 바람을 가장 충만하게 만족시킬 수 있을까 하는 과제인 것이다.
성서의 초인들
구약(舊約)성서는 실제로 초인들이 있었음을 증언한다. 성서는 초인이 되는 비결로서 「야훼의 영」에 사로잡히는 것을 말한다. 그 대표적인 증인들이 판관(判官)들이었다.
이스라엘은 이미 기원전 1000년경 판관들의 초능력을 극적으로 체험했다. 지도자도 훈련된 병사도 없었던 당시 이스라엘에게 주변국들이 자주 쳐들어왔다. 이 때 적의 무력도발에 속수무책인 이스라엘이 야훼께 도와 달라고 부르짖으면, 「야훼의 영」에 이끌린 평범한 사람들이 「카리스마」의 판관으로 등장한다. 급기야 전쟁은 승리로 끝나고 한 세월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판관기가 온통 「야훼의 영」에 사로잡힌 「판관」들의 영웅적인 승전담으로 이어져 있다. 그 가운데 삼손의 이야기는 신앙인이 아니라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다. 그의 놀라운 기운의 원천이었던 머리카락에 숨겨진 비밀, 그것이 바로 「야훼의 영」이었다.
이처럼 구약성서에서는 야훼의 영이 특별히 뽑힌 자 위에 임했다. 야훼의 영, 곧 성령은 모세?판관들?전사들?시인들?왕들?예언자들에게 역사(役事)하시며 그들을 이른바 초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초인이 되는 것은 특별한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던 것이다.
이런 와중에 홀연 요엘 예언자가 나타나 일대 전환을 예고하였다.
『그런 다음에 나는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아들과 딸은 예언을 하리라. 늙은이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리라. 그날, 나는 남녀종들에게도 나의 영을 부어 주리라』(요엘 3, 1~2).
이는 장차 누구든지 성령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었다. 곧 모두가 초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의 약속이었다.
이윽고 이 약속은 신약(新約)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우선 예수님 자신이 성령으로 충만한 생애를 살았다. 잉태 자체가 마리아의 몸에서 『성령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마태 1, 18~20). 예수님의 공적 활동도 성령에 의한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성령의 능력을 가득히 받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셨다. 예수께서는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셨다』(루가 4, 14). 나아가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루가 4, 18~21)으로 악령에게 시달리는 사람들을 풀어 주었고(마태 12, 28) 병자를 치유하였다(루가 5, 17).
이 성령의 능력은 예수님의 승천직후 마침내 「다락방」 사건을 통하여 제자들 뿐 아니라 모든 신자 안에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한마디로 성령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일을 그대로 이어서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성령의 능력을 받은 제자들은 절름발이를 낫게 했고(사도 3, 1~10; 14, 8~10), 죽은 이를 살려냈고(사도 9, 36~41; 20, 7~12), 악령을 몰아냈고(사도 16, 16~18), 열정적으로 설교할 수 있게 되었다(사도 2, 14~36; 17, 22~31). 성령께서 예수님의 골고타 길에서 뿔뿔이 도망쳤던 겁쟁이 제자들을 당당한 증거자로, 나아가 담대한 순교자로 변화시키셨던 것이다(사도 2, 1~11).
제자들뿐이 아니었다. 성령의 능력은 모든 신자들에게 9가지 은사(1고린 12, 8~10)와 9가지 열매(갈라 5, 22~23)로 나타났다. 한 사람도 예외가 되지 않았다.
『성령께서는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주셨는데 그것은 공동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 이 모든 것은 같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은총의 선물을 나누어 주십니다』(1고린 12, 7~11).
여기서 말하는 「은총의 선물」, 그것을 우리는 다름 아닌 카리스마(Charisma) 곧 하늘이 준 능력이라 부른다. 세상 사람들이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있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 이 카리스마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에게 주어진다고 믿는 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이다.
능력의 원천
실제로 작용하고 있지만 포착할 수 없고, 볼 수 없으나 강력하며, 인간이 호흡하는 공기처럼 생명에 필수적이고, 바람이나 폭풍처럼 역동적인…, 이것이 성령이다.
구약에서의 하느님의 「영」, 신약에서의 「성령」은 히브리어로 루아흐(ruach), 그리스어로 프네우마(pneuma) 그리고 라틴어로 스피리투스(spiritus)라 불린다. 이 세 단어 모두 성령이 지니고 있는 생동력을 잘 표현해 준다. 이 중에서도 특히 성령의 특성을 잘 말해 주는 단어가 스피리투스이다. 스피리투스는 오늘날 서양에서 자동차 연료를 나타내기도 하고 알코올이 들어 있는 음료수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니까 스피리투스에는 자동차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과 혈액 순환을 촉진시키는 힘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렇듯이 스피리투스 「성령」은 동력, 활력, 힘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성령을 파라클리토(paraclitus)라 부르셨다(요한 15, 26~27참조). 이 단어가 지니는 뜻 그대로 성령께서는 변호자, 보호자, 위로자, 격려자로 작용하신다. 개신교에서는 이 단어를 보혜사(保惠師)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이들 여러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뉘앙스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느껴져 온다. 보호해 주시고 도와주시고 능력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
새삼스럽게 확인해 보자.
오늘날 우리가 바라는 힘(power)의 진정한 원천, 그것은 바로 우리 신자들이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통해 받은, 그러나 마치 산소의 고마움을 잊고 살듯이 그렇게 존재자체를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스피리투스(동력, 활력) 성령이시며 또한 파라클리토(변호자, 보호자, 위로자, 격려자) 성령이시다.
기도하는 사람 안에서 이 성령의 능력이 자유롭게 드러난다. 진정한 초인이 되는 길은 주님의 제단 아래에서 무릎을 꿇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