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평신도 주일 특집] 보편교회에서 활약하는 한국의 평신도

이승환
입력일 2024-11-04 수정일 2024-11-05 발행일 2024-11-10 제 3416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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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톨릭여성연합회 박은영 부회장, “여성 평신도 강인함·열정, 한국교회 원동력”
세계주교시노드 커뮤니케이션팀 봉사자 정태영 씨, “다름에도 하나될 수 있는 믿음 체험한 시간”

11월 10일 제57회 평신도 주일이다. ‘평신도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널리 가 닿도록 노력하여야 할 빛나는 짐을 지고 있으며’(「교의헌장」33항) 이에 따라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는 살아있는 도구이며 증인이라는 사실을 되새겨야 하는 날이다. 
한국교회 평신도로는 처음 세계가톨릭여성연합회 부회장에 선출돼 아시아교회 여성들의 연대와 세계 무대로의 진출 길을 넓히고 있는 박은영(이사벨라) 씨, 그리고 자신의 탈렌트를 십분 발휘하며 가톨릭교회의 새 역사를 쓴 세계주교시노드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한 정태영(베드로) 씨를 통해 평신도의 소명과 역할을 재조명한다.

■ 세계가톨릭여성연합회 박은영 부회장

교회 안 여성 역할과 위상 증진 강조
사제에 대한 존중과 수동적 태도는 달라…능동적 참여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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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영 부회장은 “한국 여성 평신도들의 강인함과 신앙에 대한 열정이 한국교회 발전에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민경화 기자

“여성은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지요? 한국의 여성 평신도들은 어머니로서의 강인함과 더불어 신앙에 대한 강한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신도 주일을 맞아 만난 세계가톨릭여성연합회(World Union of Catholic Women’s Organizations·WUCWO) 박은영(이사벨라) 부회장은 한국 여성 평신도만의 장점으로 ‘강인함’과 ‘열정’을 꼽았다. 여성 평신도의 역할을 강조한 시노달리타스의 흐름 속에서 “한국의 여성 평신도들이 잠재된 열정을 이끌어 내 보다 능동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였다.

박 부회장은 오랜 미국 생활 이후 2000년 귀국해 신앙생활을 이어나갔다. 사제와 평신도의 관계가 비교적 수평적인 미국교회의 모습이 익숙한 박 부회장에게 한국에서의 신앙생활은 낯설게 다가왔다.

“레지오와 성모회 활동을 하면서 본당 안에서 여성의 역할이 음식 준비 등 보조적인 일에 국한된 것에 안타까움이 컸어요. 전통적으로 해왔던 여성 신자들의 역할만 유지하며 새로운 제안이나 시도를 하지 않는 분위기였죠. 사제를 귀하게 여기는 것과 수동적인 태도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여성들 스스로 교회 안에서 역할을 제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시도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이후 서울대교구 가톨릭여성연합회와 인연이 닿은 박 부회장은 연합회 회장을 거쳐 세계가톨릭여성연합회 이사를 지낸 뒤 2023년 부회장에 선출됐다. 한국교회 평신도로서 처음이자 비영어권 국가 출신의 부회장 임명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세계교회 안에서 영어권이 아닌 나라들은 아무래도 연대의 끈이 느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사로 임명되면서 가장 주력했던 활동은 아시아 교회의 연대와 그들이 세계 무대로 나올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박 부회장은 교회의 주축인 여성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은 ‘참여’에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독려하고자 노력했다. 이는 시노달리타스의 정신과도 연결된다. 지난 7월 발표된 세계주교시노드 제2회기 의안집은 크게 개혁과 쇄신의 키워드에 주목했다. 이를 위해 요구되는 것은 ‘참여’와 ‘동반’이다. 특별히 교회 안 여성의 역할과 위상의 증진을 강조하며 “각국 주교회의는 우리 시대의 사목적 요청에 대한 응답으로 여성들에게 주어진 은사와 성령의 은총을 더욱 잘 드러낼 수 있는 직무적, 사목적 지침들을 더 깊이 탐구할 것을 요청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역할과 위상이 높아진 뒤에는 책임이 따른다. 박 부회장은 교회 안에서 여성의 역할이 확장되는 만큼 그에 따르는 책임감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찾는 것이 선행돼야 합니다. 역할이 커진 만큼 신앙적으로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하고, 이를 위해서 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알려주는 봉사정신과 사랑 실천도 여성 평신도들이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 시노드 커뮤니케이션팀 봉사자 정태영 씨

한 달간 시노드 영상 제작 봉사자로 참여
경청하고 공감하는 대화 모습에 큰 감동…평신도 사명 되돌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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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바티칸에서 열린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2회기에서 ‘시노드 커뮤니케이션팀’ 봉사자로 활동한 정태영 씨. 정태영 씨 제공

지난 10월 한 달간 보편교회의 심장 교황청에서 열린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2회기. 인스타그램(synod.va)을 비롯한 시노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는 회의 모습과 대의원들의 인터뷰 등 다양한 영상이 한국인 청년의 손을 거쳐 매일매일 업로드됐다.

마치 현장에 있는 듯 생생한 모습을 직접 촬영하고 다듬어 세계교회에 전한 주인공은 세계주교시노드 커뮤니케이션팀에서 비디오그래퍼로 봉사한 정태영(베드로·서울대교구 중앙동본당) 씨다.

영상 제작 전문 프로덕션에서 PD로 일하는 정 씨는 서울대교구 청년성서모임 연수 영상이나 살레시오 수녀회의 150주년 뮤지컬 제작에 참여하는 등 자신의 탈렌트를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데 힘써 왔다. 현재도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콘텐츠팀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신부님이 시노드 봉사자 공고 소식을 알려주셨어요. 제 능력을 보편교회를 위해 쓸 수 있는 뜻깊은 기회라 생각했습니다. 휴직을 해야 참가할 수 있어 고민도 했지만 다행히 회사에서도 흔쾌히 허락해 로마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제2회기 개막부터 폐막까지의 모든 과정을 대의원들보다 더 가까이에서 담아 전 세계에 전하는 일. 세계 각국에서 온 봉사자 17명과 함께 한 10월 한 달은 하루하루 새로움이자 경이로움이었다. 줄곧 접하면서도 추상적으로만 와닿았던 ‘시노드’를 눈으로, 머리로 그리고 가슴으로 체험한 시간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시노드의 대화 방식이었습니다. 세계 각 대륙에서 온 수백 명이 원탁에 둘러앉아 진솔한 이야기에 서로 귀 기울이며 공감하는 모습은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줬습니다. 그렇게 켜켜이 쌓인 대화가 최종문서라는 열매로 드러난 순간,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대화가 이런 것임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정 씨는 시노드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 배운 것은 ‘다름에도 불구하고 하나가 될 수 있는 믿음의 힘’이라고 전했다. ‘시노드는 끝이 아닌 시작’이라는 이야기에 깊이 공감한다는 그는 “교회 내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대화를 멈추지 않고 하나가 되어 가는 노력 그리고 그 길에는 언제나 하느님께서 계심을 잊지 않고 시노드 정신을 실현해 나갔으면 한다”고 전했다.

보편교회 역사의 획을 긋는 시노드에 참여하며 청년 평신도로서의 역할도 되돌아볼 수 있었다.

“평신도는 교회를 세상 속에 전파하는 최전선에 있습니다. 성직자가 교회를 지탱한다면, 평신도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말씀과 사랑을 전하는 사명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직장과 가정, 학교 등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만큼 이 사명을 늘 기억하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교황청에서의 봉사를 계기로 정 씨는 앞으로도 교회를 위한 영상 제작에 더욱 헌신하고 싶다고 했다. 서울 WYD 콘텐츠팀에서 활동하며 교회의 아름다운 순간을 널리 알리는 데 더욱 노력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전했다.

한국으로 귀국하는 비행기에 오르며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남긴 정 씨의 글에서 다음 걸음을 내딛는 젊은 평신도의 포부를 엿볼 수 있다.

“바티칸에서 보낸 한 달, 그간의 모든 걸음이 기적으로 느껴집니다. 시노드는 끝났고 삶은 계속됩니다. 그렇기에 시노드는 끝나지 않았음을 되새겨봅니다. 함께하는 여정은 이제 시작이니까요. 하느님께 감사하며, 그 사랑에 감동하며, 다음 걸음을 내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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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2회기가 열린 바티칸 바오로6세홀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정태영 씨. 정 씨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노드 회의 시작 30분 또는 1시간 전 입장해 대의원, 봉사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이야기를 나눴다. 정태영 씨 제공

 

 

이승환 기자 lsh@catimes.kr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