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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가톨릭교회의 보고(寶庫)-성령(2)

입력일 2005-01-23 수정일 200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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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충만하게 이끌어야

견진성사 후속 조치 없이 방치

성령강림대축일에 은사 계발을

오순절 계통 교단의 초고속 성장

미래사목연구소 책임을 맡고 있는 필자는 근래 가톨릭교회 교세의 침체국면을 타개할 묘책을 찾기 위하여 기도하며 부심해 왔다. 그 일환으로 20세기 세계 각 종교들의 교세증감 추이를 분석하던 중, 놀라운 현상을 하나 발견하였다. 그것은 소위 「오순절 계통 교단」이 근래 40년간 초고속으로 급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미국연감에 의하면 지난 30년간(1965~ 1994) 미국 교회의 교단적 성장률을 비교할 때 이른바 비오순절 교단의 교회는 대부분 감소해온 반면, 오순절 계통의 교회는 비약적인 성장률을 기록해 왔다. 이 기간동안 비오순절 교단에 속하는 미국 장로교는 13.1%, 개혁교회는 19.8%, 감리교는 22.4%의 신도수가 감소하는 부진을 보였만, 오순절 교단에 속하는 「하나님의 성회」는 306%, 「하나님의 교회」(클리브랜드)는 252%, 「나사렛 교회」는 74%, 「그리스도안의 하나님의 교회」는 무려 1232%(!!!)의 교회성장률을 기록한 것으로 집계되었던 것이다.

불과 40년 전만 해도 오순절 계통 교단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존재를 알고 있지 못할 만큼 작은, 역사래야 고작 100년도 안되는 신생 교단이었다. 그러던 것이 1960년대 이후 초고속으로 약진하기 시작하더니 2000년 현재 그 신도수가 세계 개신교 총인원 3억4천만보다 훨씬 많은 5억3천만여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경이로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한국의 경우, 오순절 교단에 속하는 여의도 순복음교회(당회장 조용기 목사)만 해도 단일교회로서 세계 최대인 70만의 신자를 구성원으로 하고 있다. 현재 이 교회가 주도하고 있는 대형사업들을 파악해보면, 이 숫자가 단순히 양적인 의미만 지니는 것이라고 일축해 버리기 어렵다. 그럴 만큼 다양하게 사회적으로 공헌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세계 그리스도교의 발전을 위한 연구비 지원, 사회복지활동, 국민일보를 매체로 한 문화운동 등 우리는 그 사회적 영향력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기독교 신자 국회의원 조찬기도회를 주도할 만큼 정치력도 지니고 있다. 연간 재정규모 역시 450만 신도를 자랑하는 가톨릭교회의 규모를 능가하고 있는 판이다.

「저들은 양(量)으로 밀어붙이지만 우리는 질(質)로 가면 된다」라고 자위하는 것은 궁색한 변명이다. 양에서 우위를 점한 것은 질에서 우위를 점했기 때문이다. 양에서 부진하면, 질은 말할 기회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들에겐 뭔가가 있다

우리는 저들의 성과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물론 그 뒤에 드러나지 않은 그늘이 있을 것이고 허점이나 폐단이 있을 것이다. 5억이라는 숫자의 사람들을 바보로 여겨서는 안 된다. 뭔가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몰려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뭔가」가 무엇일까? 그 「뭔가」는 다름 아닌 성령의 강력한 역사(役事)였다. 오순절 교단은 하느님의 백성인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체험하고 증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는 것이 성령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오순절 교단은 성령을 교회성장의 주도자요, 전략가요, 동력자로 여긴다. 그래서 신자들이 성령 충만, 뜨거운 기도, 역동적인 예배, 강력한 영적 체험을 누리도록 해 주기 위해서 모든 목회 역량을 쏟고 있다. 그 결과 모든 신자들이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성령의 은사 즉 카리스마를 받았다고 확신하게 해준다. 이리하여 마침내 신자들은 각자 스스로를 예언직, 사제직, 왕직의 당당한 주체로 여기고 자발적이며 헌신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최소한 두 가지를 인정하게 된다.

첫째, 교회론적인 성취를 인정하게 된다. 오순절 교단은 교회론적으로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를 이상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신자들 각자를 단순한 목회(牧會) 대상이 아닌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을 받은 복음증거의 역군으로 여길 뿐 아니라,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통하여 소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양육시키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제로 이들을 목회현장의 훌륭한 일꾼으로 투입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가톨릭 교회가 겸허한 자세로 배워야 할 당위(當爲)이다.

둘째, 경영학적인 성취를 인정하게 된다. 일반 개신교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특히 오순절 교단은 신자들이 지니고 있는 모든 역량(달란트: 재력, 소질, 시간 등)을 하느님 사업을 위해 경주할 수 있도록 리더십을 행사한다. 그럴 수 있도록 기회와 장을 마련해 주고, 그러도록 동기부여를 해 준다. 우리는 이들이 영적, 물질적, 인적 능률의 극대화를 향하여 시시각각으로 업데이트(update) 또는 업그레이드(upgrade)된 행보를 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가톨릭교회는 함께 가면서 독려하고 이끌어 내는 리더십을 이들에게서 배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교의적 원리를 넘어 사목적 원리로

가톨릭교회라고 성령을 등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톨릭교회 역시 성령을 교회 공동체를 이끄시는 절대적인 「영」으로, 교회의 「생명력」이자 「영혼」으로, 나아가 교회 「쇄신」의 동력으로 선언한다(「교회헌장」 8항 참조).

더구나 가톨릭교회에는 모든 신자에게 성령의 도유를 보장해 주는 견진성사(堅振聖事)라는 장치까지 구비되어 있다. 교회는 세례성사를 받은 신자가 견진성사를 통하여 「일치와 성숙」의 성령을 받음으로써 완전한 교회의 구성원이 되어 교회 생활 전반에 동참하게 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이 성사로써 성령 7은 또는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를 받아 그리스도인의 3직인 예언직, 사제직, 왕직에 참여하게 된다고 가르친다.

문제는 이 보물(寶物)과 같은 것들이 단지 교의(敎義)내지 통과의례 정도로 소홀히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정직하게 말하건대, 그동안 우리에게는 견진성사를 받은 신자들을 위한 후속조치가 전혀 없었다. 이들이 실제로 성령충만하게 기도하고 교회활동을 하도록 이끌어 주질 못했다. 그냥 의식 한번 치르고 방치하다시피 했다. 뿐만 아니라, 성령에 대한 열망을 고취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매년 한 번씩의 성령강림 대축일을 그냥 전례적으로만 치루고 지나간다.

우리에게 기회가 없는 것이 아니다. 해마다 견진성사나 성령강림 대축일을 전신자 은사계발을 위한 특별한 계기로 삼을 수 있다. 그전에 성서묵상과 기도로써 신자들 각자가 성령의 「성전」(1고린 6, 19)이 될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이들 전례를 기존신자들을 위한 성령강림갱신 예절로 지내고, 이후 지속적으로 이들이 다양한 교회활동에서 자신들이 받은 은사를 발휘하도록 독려한다면 성령충만한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말고 성령의 감동을 받아 전하는 말을 멸시하지 마십시오』(1데살 5, 19~20).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해지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마태 25, 29).

이 말씀을 우리는 은사 발휘를 게을리 한 개인을 향한 경고인 동시에 교회를 향한 경종으로 알아들어야 할 것이다.

차동엽 신부 <미래사목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