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98년「성령의 해」를 시작하며… 김보록 신부의 성령을 따라 영성을 따라] (3) 『육적인간』과 『영적인간』

김보록 신부ㆍ서울 돈보스꼬 정보문화센터 원장
입력일 2010-07-02 수정일 2010-07-02 발행일 1998-01-25 제 2087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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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행복하고 기쁘고 평화롭고 자유로이 사는 길은 「육적인 삶」이 아니라 오직 성령을 따라 「영적인 삶」을 사는 길 밖에 없다”
사도 바오로는 그의 편지의 여러 곳에서 인간을 「육적인간」과「영적인간」으로 나주어 설명한다(로마8, 2~16:갈라5, 16~26등). 육적 인간은 「육체를 따라 사는 인간」이며 영적인간은 「성령을 따라 사는 인간」이다.

육적 인간은「육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고 흥미를 느끼며 그 일에 재미와 만족을 누린다. 「육적인 일」이란, 세상의 일, 즉 현세적 인간적 물질적 감각적인 모든 일을 총괄한다. 육적 인간은 이러한「육적인 일」에 휘말려 마음이 사로잡힌 상태에서, 육적인 일을 최고 유일한 가치로 삼아 이 가치를 소유하기 위해 온갖 힘을 쓴다.

육적 인간은 그 마음이 육적인 일로 가득 차, 영적인 일에 닫혀져 마비되었으며 영적인 일을 전혀 느끼지도 이해하지도 즐기지도 못한다. 영적인 일을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마태 13, 13) 「영적 무감각」과 「영적 무감동」의 상태가 되어「영적 불감증」에 걸려 있는 것이다.

반면에「영적 인간」은 영적인 일을 직관적으로 깨닫고 받아들이고 그 맛을 즐긴다. 그는 『하느님의 신비가 얼마나 넓고 길고 높고 깊은지를 깨달아 알고 인간의 모든 지식을 초월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 수 있으며』(에페 3, 18~19) 『하느님의 심오한 풍요와 지혜와 지식을 파악하고 그분의 판단을 헤아리고 그분이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있다』(로마 11, 33).

육적 인간은 육적인 일에 「중독」되어 그 노예(로마8, 15)가 되었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어』(갈라 5, 17) 평화와 기쁨과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 세상과 자기 생활을 오직 인간적 물질적 감각적인 시각에서만 보고 평가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늘 불안하고 두렵고 초조하고 억울하게 살 수 밖에 없다.

한편 영적 인간은 영적인 일에 참 기쁨을 찾아냈으며 「하느님의 자녀」(로마8, 15.16) 「하느님의 상속자」(로마 8, 17)가 되어 하느님의 편에 서서 세상을 보고, 같을 입장에서 인생을 평가하고, 하느님과 같은 마음으로 행동하고 같은 사랑으로 산다. 늘 그분께 가까이, 그분 안에 살기 때문에 마음이 든든하고 평화롭고 감사히 지낸다.

육적 인간은 하느님께 대한 「공포심(로마 8, 15)으로 벌을 받기가 무서워 마지못해서 일을 하거나, 미신적인 보답만을 노려 일을 하기 때문에, 모든 일은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행위가 된다. 육적 인간의 마음은」돌처럼 굳은 마음「(에제 36, 26), 딱딱하고 차갑고 바싹 말라버린 마음,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마음이어서 회개하여」영적 인간「이 되기가 지극히 어렵다. 결국 그는」하느님의 원수「(로마 8, 6. 13)인 것이다.

반면에 「영적 인간」은 『육적인 일을 십자가에 못 박아』(갈라 5, 24)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에』(로마 8, 2) 온전한「자유」(갈라 5, 13)와 「생명」(로마 8, 6)을 누리며 산다. 모든 일을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스스로, 기쁘게 한다. 인간적인 사심을 떠나 오직 하느님과 남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기 때문에 그만큼 진정한 보람을 누린다. 영적 인간의 마음은 『산처럼 부드러운 마음』(에제 36. 26) 『피가 통하는 마음』(에제 11, 19) 너그러운 마음이다. 그는 「영적인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신속히 관대히 응답하기 때문에 그만큼 보답을 받아 축복받은, 복된 삶을 산다.

나는 「육적 인간」인가? 「영적 인간 」인가? 나의 관심과 흥미는 「육적인 일」에 있는가? 「영적인 일」에 있는가? 나는 「육적인 일」에 휘말리고 사로잡혀, 「육의 노예」가 되어, 비참하고 불안하게 살고 있는가? 아니면 「영적인 일」에 몸 바쳐 그 맛을 보고,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자유의 기쁨을 누리며 살고 있는가? 나는 「육적인 삶」으로서 죽음의 길을 걷고 있는가? 아니면 「영적인 삶」으로서 생명의 길을 걷고 있는가?-진지하게 자신을 돌이켜 반성해야 한다.

하느님은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고 기쁘고 평화롭고 자유로이 살기를 원하신다. 결코 불행하고 슬프고 불안하고 억울하게 살기를 원하시지 않는다. 진정으로 행복하고 기쁘고 평화롭게 자유로이 사는 길은 오직 성령을 따라 「영적인 삶」을 사는 길 밖에 없다.

김보록 신부ㆍ서울 돈보스꼬 정보문화센터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