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 상보

로마(이탈리아) 오혜민 기자
입력일 2011-05-04 수정일 2011-05-04 발행일 2011-05-08 제 2745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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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함께한 ‘기적의 축제’
3시간여의 시복식은 매순간이 ‘기적’이었다.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 모인 87개국 300여만 명의 참석자들은 휘장이 올라가며 드러난 요한 바오로 2세의 모습에 함께 환호했고,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강론 후에는 함께 침묵하며 묵상에 잠겼다.

전 세계가 ‘빠빠(교황)’의 복자됨을 축하했다. 2005년 그의 선종 이후 그를 그리워하던 바티칸은 지금 ‘축제’다.

▧ 마음의 촛불 하나

2005년 5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선종 당시 신자와 비신자의 구분 없이 눈물을 흘리며 묵주기도를 봉헌하던 모습 그대로, 참석자들은 시복식 전날인 4월 30일부터 바티칸을 메웠다. 이날 오후 8시 고대 로마시대 원형경기장 치르코 마시모(Circo massimo)에서 전야미사를 봉헌한 이들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지정한 ‘빛의 신비’를 묵상하며 그를 회상했다.

산타체칠리아 합창단의 연주와 함께 어우러진 묵주기도는 이탈리아어를 비롯한 6개 국어로 진행됐으며, 전 세계를 사목 방문한 교황의 모습을 영상으로 기억했다. 시복의 근거가 된 마리 시몬 피에르(Marie-Simon-Pierre, 가톨릭 모성의 작은 수녀회) 프랑스 수녀의 기적체험도 함께 나눴다.

피에르 수녀는 “여기 있는 모든 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여러분들을 바라보고 행복해하실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파킨슨씨병이 진행되면서 자신의 이름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힘들었다”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전구를 청한 후 제 몸의 무엇인가 변화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생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강조한 부분도 신자들의 기도로 봉헌됐다. 교황이 사랑했던 전 세계 젊은이들과 각자의 가족, 모든 이들의 복음화, 평화와 희망, 교회를 위해 참석자들은 촛불을 손에 들고 온마음으로 기도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마침기도 영상으로 기도를 마친 그들은 ‘비바, 빠빠(교황이여, 영원하라)’를 외치며 바티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바티칸에 도착한 신자들은 요한 바오로 2세를 회상하고 노래를 부르며 시복 전날 밤을 지새웠다.

▧ 시성을 향해

1일 오전 10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식이 거행됐다. 새벽부터 성베드로광장은 물론 바티칸 길목이 각 나라에서 온 신자들로 가득 찼다. 이탈리아와 교황의 고향 폴란드, 그리스, 포르투갈, 레바논, 브라질, 필리핀, 아르헨티나, 캐나다, 미국, 멕시코, 프랑스 등 전 세계에서 모인 이들은 저마다의 국기를 흔들며 ‘비바, 빠빠’를 연호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을 선언합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시복 선언과 함께 성베드로성당 외벽에 있던 요한 바오로 2세의 사진 위 휘장이 걷히자 참석자들은 모자를 벗어 흔들며 큰 소리로 환호했다. 이어 마리 시몬 피에르 수녀가 요한 바오로 2세의 혈액과 유해를 봉헌했다. 제단에 봉헌된 혈액은 요한 바오로 2세가 생전 자가수혈에 대비해 채혈된 것으로 냉동상태로 보관 중이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날 미사강론을 통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을 재천명하고 “오늘은 요한 바오로 2세가 시복된 부활 제2주일 자비주일”이며 “이날이 선택된 이유는 하느님의 섭리로 그가 이 축제의 전날 선종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오늘은 5월을 시작하는 성모성월이자 노동자의 성인 요셉을 기억하는 날”이라며 “이러한 모든 요소들이 우리의 순례 여정에 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그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 일할 수 있었던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면서 “1982년부터 23년 동안 신앙교리성 장관을 지내며 그의 곁에서 그를 존경해왔다”고 덧붙였다.

교황은 시복식을 마친 후 사제단과 함께 성베드로성당에 놓인 요한 바오로 2세의 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일지

4월 2일 자비주일 전야 : 선종

선종 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에 대한 기존 시복 규정(통상적으로 시복조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5년 간의 유예기간이 필요하다) 면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잘 아는 120여 명을 대상으로 인터뷰 실시

2005년 6월 : 프랑스 출신 마리 시몬 피에르 수녀가 2001년 40세의 나이로 판정받은 불치병 파킨슨씨병 치유(당시 회원들은 한층 심해진 수녀의 병 치유를 위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전구를 기도함)

2007년 4월 : 교황 선종 2주기 맞아 시복 시작 단계의 조사가 마무리 됐음을 발표, 관련 문헌 교황청 시성성에 전달

2008년 11월 : 시성성 조사팀 포시티오(2000쪽 분량의 성덕에 관한 의견서, positio) 검토 시작

2009년 말 : 시복시성의 지속적 추진 투표로 결정

2009년 12월 :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요한 바오로 2세의 영웅적 덕행(Heroic virtues) 선언, 가경자(Venerable, 可敬者)로 선포하는 칙령 발표

2010년 :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전구를 통해 불치병이 치유됐다는 보고에 대한 심사, 과학적이고 의학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없다는 결론.

2011년 1월 14일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전구 통한 치유의 기적 승인 칙령 반포(마리 시몬 피에르 수녀의 파킨슨씨병 치유)

2011년 5월 1일 자비주일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시복, 선종 6년 만에 이뤄지는 교회 역사상 가장 빠른 기간의 시복

바티칸 성베드로광장에 모인 87개국 300여만 명의 참석자들.

로마(이탈리아) 오혜민 기자 (oh0311@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