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환경

“거짓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탈핵 위한 한·일 연대

민경화
입력일 2024-10-14 수정일 2024-10-18 발행일 2024-10-20 제 3413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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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주님 주신 희망의 빛’ 제10회 한일 탈핵 평화순례

매년 10월이면 한국과 일본교회의 탈핵운동 활동가들은 양국을 오갔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가 아니었다. 핵발전소와 가까운 접근금지구역 인근이거나 핵발전소 사고로 사람들이 떠난 황폐화된 마을이었다. 도시에서 ‘탈핵’을 외치는 그들을 보는 시선도 곱지만은 않았다. 편안하게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핵발전을 도시 사람들은 반대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일 탈핵 평화순례 10년은 어려움을 견뎌내는 고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월 10일, 10번째 순례를 시작한 순례단의 표정은 아름답고 결연했다. 하느님이 주신 나침반을 따라 옳은 길을 가는 이들의 여정에는 희망의 빛이 따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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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1일 한일 탈핵 순례단이 월성원자력발전소 앞에서 “탈핵”을 외치며 사진을 찍고 있다. 민경화 기자

■ 한일 교회 탈핵운동 10년의 시작

2011년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는 인근 마을의 시간을 멈추게 했다. 젊은이들이 떠난 도시에는 남은 생을 고향에서 보내려는 노인들만 남았다. 천혜의 어장이었던 후쿠시마현 해변은 고기를 낚을 수도, 해수욕을 즐길 수도 없는 죽음의 바다가 됐다. 사고 이후, 더 많은 문제들이 수면위로 떠올랐다. 핵발전소에서 일하거나 인근에 사는 주민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물었으나 “문제가 없다”며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기업과 정부의 잔인한 모습을 목격해야 했다. 가족과 이웃의 죽음, 그리고 내 생명까지 위험한 상황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은 없었다.

같은 해 일본 센다이교구에서 열린 한일 주교 교류모임에서 주교들은 핵발전 문제를 심도있게 논의했다. 그리고 일본주교단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을 지키고 후손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물려주기 위해 핵발전소를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후 한국과 일본교회는 탈핵운동을 위한 교류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을 파괴하고 인간의 생명과 존엄성을 위협하는 핵발전소를 유지하는 것은 가톨릭 교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2014년 한국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가 합류하면서 탈핵평화운동의 형태로 한국과 일본의 활동가들이 순례하는 ‘한일 탈핵 평화순례’가 시작됐다.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 총무 양기석(스테파노) 신부는 “핵발전소는 세워질 때부터 시민들 특히 해당지역의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면서 시작될 뿐 아니라 전기를 편하게 쓰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핵발전소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피폭문제가 숨겨지고 있다”며 “국가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힘없는 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이러한 문제들은 하느님께서 원하는 세상과는 정반대인 모습이기에 신앙인들은 탈핵운동에 동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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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1일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 부위원장 황분희씨가 원전 인근에 거주하며 겪는 어려움들을 설명하고 있다. 민경화 기자

■ 핵발전으로 고통당하는 사람 위해 동행할 것

격년으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10년간 이어진 순례. 지난해에는 일본 센다이교구 안에 있는 핵발전소와 후쿠시마 제1원전 인근을 둘러봤다. 올해 한국으로 넘어온 순례단은 10월 10일부터 13일까지 경주의 월성핵발전소와 부산의 고리핵발전소를 순례했다.

11일 경주에 도착한 순례단은 월성원자력홍보관 앞에서 10년째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주민들을 만났다.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5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인 가운데, 남은 핵발전소의 수명연장까지 논의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민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월성원전 인접지역 이주대책위원회 부위원장 황분희씨는 “핵발전소 인근에서 미세하게 공기로 방사능이 몸속으로 들어가는 환경에서 몇십 년간 살면서 내 자식, 손주들의 건강이 위험한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며 “한국수력원자력과 정부 등 핵발전소와 관계있는 모든 곳에서 주민들의 안전을 외면하고 있는 상황이 답답하기만 하다”라고 말했다.

더욱이 방사능으로부터 위험한 지역이라는 이유로 집이 매매되지 않는 상황에서 나아리를 떠날 수 없는 이들의 심정은 막막하기만 하다. 원전제한구역 914m 기준 대상에서 빠진 원전 1km 안 3개 마을 주민들은 10년째 “이주대책 마련과 노후원전 폐쇄”를 촉구하고 있으나 정부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주민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있다.

순례에 참여한 노리코 히루마 씨는 “몇 년째 월성핵발전소에 와서 주민들을 만났지만 이분들의 상황이 달라지지 않은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며 “신앙은 인권과 존엄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소외된 사람들 편에 서야 한다고 알려주고 있기 때문에 이분들의 인권이 침해되는 것에 저항하며 함께 투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기석 신부는 순례를 마무리하며 “우리는 10년 동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핵발전소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을 수없이 많이 만났고 진실을 은폐하는 거대한 벽을 마주했다”며 “이것을 깨기 위해 10년간 노력을 했듯이, 앞으로도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지속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함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