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지 주일하면 빠질 수 없는 예식이 있습니다. 바로 성지(聖枝) 예식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당시 유다인들이 나뭇가지를 들고 환호하던 모습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이 예식은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의 전통입니다. 신자들은 4세기 무렵부터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맞던 유다인들처럼 나뭇가지를 들고 행렬하는 예식을 했다고 합니다.
사제가 이 나뭇가지를 축복하면, 우리는 이 나뭇가지를 ‘성지’라고 부르면서 한 해 동안 자기 집의 십자가 근처에 두고 지냅니다. 이를 통해 우리 구세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이지요. 또 이 성지를 다음 사순 시기 전에 수거해, 불에 태워서 ‘재의 수요일’에 사용할 재를 만듭니다. 흔히 ‘성지가지’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성지의 ‘지(枝)’가 ‘가지’을 의미하는 한자라서 ‘성지가지’는 동어반복으로 잘못된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이 성지는 무슨 나무로 만들까요? 아무래도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 당시를 기념하는 만큼, 유다인들이 사용한 나뭇가지를 사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떤 나뭇가지인지는 성경에 기록돼 있는데요. 요한복음 사가는 유다인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그분을 맞으러 나갔다”고 전합니다.(요한 12, 13)
종려나무는 성경에 ‘야자나무’, ‘대추야자나무’라고도 등장합니다. ‘팔마(palma)나무’라고도 하지요. 종려나무는 키가 크고 줄기가 곧은 상록수입니다. 게다가 척박한 이스라엘의 광야에서도 잘 자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소중한 과실나무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예로부터 머리, 곧 수장, 임금을 나타내고, 의인을 상징하는 나무였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초막절에 종려나무 가지를 썼고(즈카 14, 16), 솔로몬이 성전에 종려나무를 새겼다(1열왕 6, 29)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종려나무는 임금이신 하느님을 나타내는 나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성수를 뿌려 축복한 성지는 영원한 생명과 승리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종려나무가 자라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종려나무와 마찬가지로 상록수 중 하나인 편백나무를 성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편백나무도 따듯한 지역에서 자라기 때문에 성지로 사용하는 편백나무의 가지들도 대부분 남부지방, 특히 제주도에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제주교구에서는 10여 개 본당 신자들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을 앞두고 전국 각지에 나뭇가지를 보낼 준비로 구슬땀을 흘린다고 합니다. 나뭇가지 숫자만 100만 개 이상이라고 합니다. 판매기금은 각 본당의 복음화 사업에 사용됩니다.
제주교구 생태환경위원회 오충윤(야고보) 위원장님은 “우리나라에서 선교하던 에밀 타케 신부님도 식물을 판매한 돈으로 선교에 활용하셨는데, 지금도 식물을 팔아 복음화 사업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아! 혹시 성지 예식을 위해 나무들이 희생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시는 분이 계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가지치기를 해야 할 편백나무에서 가지를 치면서 나오는 나뭇가지들을 활용하기 때문에, 생태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고 하네요.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
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