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한 교회로의 변화…주님 뜻이라 생각” 여성 사제 ‘편견' 힘들었지만 동료들 덕분에 꿈 이뤄 교회 내 性 역할 나누기 보다 모두 공평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예수님은 세상을 해방시키러 오신 분입니다. 그런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 안에서는 누구나 평등해야 하죠.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에서 제가 여성으로서 처음 총사제로 임명된 것은 성평등한 교회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한성공회 광명교회 관할사제인 민숙희(마가렛) 신부는 서울교구에서 총사제에 임명된 최초의 여성 사제다. 3월 2일 서울교구 서부교무구 총사제로 임명된 민 신부는 주교를 대신해 교무구를 대리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교구의 사업 방향을 논의하고 교구와 서부교무구가 협조하는 것을 돕는다. 또한 서부교무구 소속 사제들을 대표해 각종 의견을 수합하고 사제들 간 협력을 도모한다.
“총사제는 주교님이 임명하십니다. 2005년 사제품을 받고 연차로 중고참이 됐으니 총사제로 임명될 만한 위치이지만, 교회 안에 여성주의 관점이 공유되지 않았다면 어려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저의 총사제 임명을 통해 교회 안에서 여성의 리더십이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쁜 마음이 큽니다.”
현재 서울교구에만 5명의 여성 사제가 활동하고 있지만 민 신부가 신학과에 입학했던 1988년 당시만 해도 여성이 사제가 되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원에 입학해야 하지만 주교의 추천을 받기 어려웠다. 1998년이 되자 주교 추천 없이도 신학대학원에 입학할 수 있게 됐지만 남자들만 응시할 수 있는 성직후보자고시가 신설됐다.
“사제로 가는 여정에 크고 작은 장애물이 있었지만 응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은 동료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같이 신학대학원에 입학한 3명의 여학생, 그리고 불평등한 성직자후보고시 응시를 거부한 남학생들까지, 교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그 길을 함께 걸어준 사람들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올 수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005년 서품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신자들이 제대에 선 여성 사제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연세가 많으신 신자분들은 사제는 예수님의 대리자라는 생각에 남자여야 한다는 인식이 컸습니다. 제가 부임하자 ‘여자가 신부가 된걸 보니 성공회도 다 망했네’라며 비아냥거리는 분들도 계셨죠. 처음에는 상처도 많이 받았지만 여자인 신부가 낯설기 때문에 생기는 부침이라고 생각하고 ‘교회를 위해 열심히 일하자’라는 생각만 했던 것 같습니다.”
일찍부터 세계성공회협의회는 성평등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힘써 왔다. 각 관구에 여성국을 둘 것을 제안했고 대한성공회도 1997년경 여성부를 만들어 교회에 성차별적 요소가 있는지 살피고 성평등한 교회가 되기 위해 공식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왔다. 이는 억압당했던 소수자들 편에 섰던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실천이었다.
민숙희 신부가 사제가 되고서 가장 힘을 기울인 것은 열린 교회 만들기다.
“교회는 모든 교인들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 누구도 교회 안에서 소외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희 광명교회는 동물은 물론이고 성소수자, 장애인, 외국인노동자 등 누구나 감사성찬례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됐던 애찬(주일 성찬식) 준비 시스템을 바꾼 것도 열린 교회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청소와 요리 등 교회 안에서 여성의 역할을 구분 짓는 것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를 비롯해 모든 신자들이 포함된 애찬봉사조를 만들었고, 모두 공평하게 애찬준비를 하게 됐습니다. 남성 신자들은 처음에 탐탁지 않아 했지만 설교를 통해 세상이 성평등한 방향으로 달라지고 있음을 꾸준히 강조하면서 신자들의 인식이 조금씩 바뀔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정의, 평등, 생명을 실천하는 교회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성경 속 글로만 읊조리던 복음을 실천하자 교회는 세상의 빛이 됐다.
민숙희 신부는 “여성으로서 사제가 된 것은 교회가 변화됐으면 하는 주님의 뜻이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한다”며 “총사제로서 앞으로 성평등한 교회, 녹색교회로 나아가는 것에 지향점을 두고 사목하고 싶다”고 말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