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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기획] 빛을 기다리는 사람들 / 서울 노량진동본당 공무원 수험생들의 대림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n권세희 기자
입력일 2017-12-05 수정일 2017-12-06 발행일 2017-12-10 제 3073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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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함보다 더 힘든 건 외로움… 미사 통해 ‘위로와 평화’ 느껴”
구직난에 공무원 희망자 늘어나 전문학원 몰린 노량진 북적북적
불안한 미래 중압감 크지만 신앙으로 이겨내는 수험생들
노량진동본당, 주일 저녁마다 수험생들 위한 미사 봉헌
간식과 교회신앙지 나눠줘 시험과 면접 준비 장소 개방도

대림 시기는 구세주 오심을 기다리는 때다. 신자들은 이 시기를 간절하고 감미로운 희망의 시간으로 보낸다. 기쁘면서도 간절한 대림 시기, 추운 겨울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는 노량진동본당(주임 남상만 신부) 공무원 수험생 청년들을 만났다.

그들은 힘겨운 수험생활 속에서도 신앙 안에서 위로 받고 미래를 위해 묵묵히 걸어가고 있었다.

- 매일 똑같은 삶, 공시생들의 하루

정부의 공공기관 일자리 확대 방침과 불안한 경제구조가 맞물리면서 정년과 안정적인 노후를 보장하는 공무원으로 시선을 돌리는 청년들이 많아졌다. 청년들뿐만 아니라 사기업에 취업했다가 퇴직하고 다시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경우도 있다. 20대 후반과 30대, 심지어 40대까지 공시생 대열에 합류하는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에 따라 일반행정직, 경찰, 소방, 교원 등 시험종류별 전문학원가가 즐비한 서울 노량진 일대에 공시생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지사. 지하철 노량진역에 내리는 순간부터 담벼락은 물론이고 건물 이곳저곳에 붙은 ‘공무원시험 패스’, ‘단기완성’ 등의 광고문구들이 눈에 띈다. 수험생들 사이의 경쟁만큼이나 학원가의 경쟁도 치열하기는 마찬가지. 수험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서점, 식당, 서서 끼니를 때우는 컵밥집 등 노량진 수험가의 상징같은 장소들이 골목길을 점령하고 있다.

거리에도 두꺼운 책을 들고 바쁘게 걸어가는 수험생들이 많다. 학원 안 역시 빽빽하게 수험생들이 앉아 있다. 저녁시간이 가까워 오는데도 100여 명의 수험생들이 팔을 겨우 펼만한 좁은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다.

7급과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김경은(마리노·28)씨의 하루도 여느 수험생들과 다르지 않다. 그는 매일 아침 8시 학원에 도착해 공부를 시작한다. 그리고 오후 6시, 학원 수업이 끝나도 하루 일과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저녁식사 후 밤 12시, 늦으면 새벽까지 다시 수험서와의 싸움을 이어간다.

12월 3일 서울 노량진동본당 주일 오후 7시 미사에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신자들. 이들 가운데 상당 수를 차지하는 공무원 시험 준비 수험생들은 힘겨운 수험생활 중에서도 미사를 통해 마음의 위로와 평화를 얻는다.

노량진동본당 남상만 주임신부(오른쪽)가 12월 3일 오후 7시 미사에 참례한 청년 신자들에게 성체를 분배하고 있다.

미사를 마친 뒤 봉사자들이 선물을 나눠주고 있다. 선물봉투에는 간식과 가톨릭신문 등이 들어 있다.

수험생 선물 봉투에 간식을 담고 있는 노량진동본당 봉사자들.

노량진동본당 봉사자들이 수험생들에게 나눠줄 선물 봉투에 성경구절을 붙이고 있다.

노량진본당 주일 오후 7시 미사 전례음악 봉사를 준비하고 있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 김경은씨.

주말이 오기 전까지 매일 같은 일정에 따라 공부를 한다.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을 되풀이하기도 점점 힘들어진다. 합격이 보장만 된다면 더 힘든 생활도 견딜 것 같지만 노량진 수험가를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불안한 미래’가 주는 중압감이 크다.

수험생활 중 가장 힘든 것은 무엇보다 ‘외로움’이다.

김씨는 “수험생활을 위해 찾은 노량진에서 살며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을 공유할 사람이 없는 쓸쓸함과 외로움이 가장 컸다”며 “학원에는 많은 사람이 있어도 서로 이야기를 거의 나누지 않기 때문에 더 그렇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노량진에는 근처에 노량진 컵밥 등 알려진 곳이 많아서 그런지 의외로 관광객이 많이 오는데, 가족, 친구들이 어울려 거리를 걷는 모습을 보면 더 외로워진다”고 덧붙였다.

- 수험생들을 위한 따뜻한 손길

힘겨운 수험생활 중 마음의 위로와 평화를 얻기 위해 공시생 청년들은 성당으로 모였다. 매 주일 오후 7시 수험생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는 노량진동본당이다. 주일 저녁 미사에는 평균 170여 명의 학생들이 성당을 찾는다. 다른 본당 청년미사에 청년을 찾아보기 힘든 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수험생들이 모여 동병상련의 정을 나누며 드리는 미사에는 그들의 간절함과 애틋함 그리고 묘한 열기가 뒤섞여 있다.

청년들이 눈을 감고 기도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올해는 꼭 시험에 합격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나오는 듯하다. 수험생들에게는 주일 한 시간의 미사가 평일 동안 쉼 없이 달려오던 벅찬 숨을 천천히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10년 가까이 냉담을 한 영어 임용시험 수험생 고준혁(돈보스코·34)씨는 “고등학교 때 세례를 받고 오랫동안 냉담을 했다”며 “학창시절 성당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졌던 기억이 떠올라 다시 성당을 찾게 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노량진동본당에는 본래 본당 소속 청년보다 타지에서 온 수험생들이 대다수다. 이들은 미래를 가슴에 품고 노량진에 모여 함께 대림 시기를 보내면서 한 주를 살아갈 힘과 새해를 맞이할 용기를 얻는다.

본당에서는 미사가 끝나면 주일학교 어머니들이 나서서 학생들에게 나눠줄 간식을 포장한다. 또 지하 교리실과 회합실을 스터디룸으로 개방해 2차시험과 면접 등을 준비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 같은 본당의 애정 어린 관심에 합격을 한 청년도 본당을 떠나지 않고 꾸준히 미사와 봉사를 하는가 하면 첫 월급 전액이나 매월 일정액을 신자 수험생들을 위해 내놓는 경우도 있다.

본당이 수험생들을 위한 사목에 집중을 하고 있는 만큼 청년들은 수험생활을 하며 힘들었던 순간들을 공유하며 소통하고 있다. ‘이야기를 나눌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힘이 된다고 청년들은 입을 모았다.

노량진동본당 박중권(미카엘·28) 청년회장은 “저도 구직 기간이 길어 수험생들과 많은 부분에서 공감하던 시절이 있었다”며 “수험생들은 어찌 보면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를 보낸다고 할 수 있지만 특히 대림 시기에는 주일미사를 드리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12월 3일 서울 노량진동본당 주일 오후 7시 미사에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신자들. 이들 가운데 상당 수를 차지하는 공무원 시험 준비 수험생들은 힘겨운 수험생활 중에서도 미사를 통해 마음의 위로와 평화를 얻는다.

■ 임용시험 준비생 박선우씨

“아기 예수님께 부끄럽지 않은 저를 만들어 가요”

힘들 때면 미사에서 마음 달래

노량진동본당 격려에 늘 감사

소명의식 지닌 교사 되고 싶어

서울 노량진에서 수학과목 ‘중등학교교사 임용후보자 선정경쟁시험’(이하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박선우(미카엘·30·수원교구 평택 서정동본당·사진)씨는 “제 수험생활 대림 시기는 제대 앞 대림초가 하나둘 켜지는 것을 보며 한 주 한 주 지나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11월 25일 임용시험 1차를 치르고 12월 말에 있을 합격자 발표를 초조하게 기다리면서 2차 수업실연과 면접을 준비한다는 박씨. 그가 노량진에서 수험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는 2014년 3월, 만 4년이 다 돼 간다. 서울 노량진동본당 인근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박씨와 같은 수험생 신자들에게 노량진동본당은 힘들고 지친 수험생활의 안식처이자 활력소라고 밝혔다.

“1차 시험 발표를 기다리며 당락 여부의 불안감과 2차 시험준비의 압박감 속에서 일주일을 버티다가 노량진동본당 주일 저녁미사에 참례해 잠시 한숨 돌립니다. 쓸쓸하고 힘들수록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고 미사에 나와 기도하면서 마음을 다스립니다.”

수험생 신분으로 노량진에서 네 번째 보내는 대림 시기의 의미는 무엇일까.

“저에게 대림은 본래 의미 그대로 ‘기다림’입니다. 구약의 4000년은 아니지만 곧 오실 아기 예수님을 맞이할 나, 아기 예수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나를 준비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누구보다 대림시기를 간절한 심정으로 하루 하루 숨가쁘게 보내는 그는 잠시 냉담했던 적이 있다. “처음 노량진에 왔을 때 넉 달 정도 주일미사에 가지 않았습니다. 한 해 바짝 공부해서 빨리 합격하고 그 뒤에 열심히 봉사하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지금 돌이켜 보면 어리석었습니다. 서정동본당에서 같이 밴드부 활동을 했던 후배가 ‘아이고, 주님께서 잘도 예뻐하셔서 시험에 붙여주시겠다’고 툭 던진 핀잔에 크게 뉘우치고 보니 제 고시원 바로 앞에 노량진동본당이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주일미사에 빠지지 않았고 지금은 미사 전례에 기타반주와 보컬을 맡아 봉사하고 있습니다.”

불안한 미래를 마주하며 대림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그럴수록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주일미사가 끝나면 간식과 가톨릭신문, 「매일미사」를 수험생들에게 나눠주시는 어머니들, 저녁식사를 자주 함께하시면서 금전적 지원을 해 주시는 주임신부님 등 고마운 분들이 많습니다. 저희 수험생들은 합격하면 대부분 노량진동본당을 떠날 사람들인데도 저희에게 따뜻한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시는 본당 공동체를 보면 대림시기를 더 뜻깊게 보내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가 대림시기에 키우는 꿈은 무엇일까. “학생들의 자아실현을 극대화하는, 소명의식을 지닌 교직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 학생들이 먼 훗날 성인이 됐을 때 불현듯 떠올리는 선생님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n권세희 기자 se2@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