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미술, 하면 할수록 매력 느껴…스토리 담긴 작품 많아지길”
공간을 지배하는 조소에 매력 느껴
저는 스스로 그림이나 예술적 자질이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그림을 보면서 자라긴 했어요. 세 남매 중 막내인데요, 형은 화가이고 누나는 금속공예가예요. 삼촌도 디자인을 전공하셨고요. 그런데 한번은 형이 미술학원에서 그려온 그림이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제가 조그만 종이에다가 형이 쓰던 연필로 따라 그린 적이 있어요. 그런데 집에 놀러 오신 삼촌이 그림을 보더니 형보고 ‘그림 많이 늘었네?’ 이러시는 거예요. 제가 ‘그게 제가 그린 건데요?’ 했더니, 삼촌이 ‘동현이도 그림을 잘 그리네?’ 이러셨어요. 그래서 속으로 ‘나도 그림을 잘 그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처음에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어요. 졸업할 때쯤 컴퓨터 디자인이 생기면서 제가 설 자리가 없었어요. 저희는 학교에서 컴퓨터 디자인을 배우진 않았거든요. 지금은 아내가 된 당시 여자친구가 조소과 학생이었어요. 여자친구가 작업을 하는 모습이 멋져 보였어요. 그림은 2차원인데 조소는 3차원이잖아요. 전시회를 보러 다니면 조각 작품 하나가 전체 공간을 지배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림이 무한으로 확장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저도 조소과로 편입했어요.
막상 조소 작업이 쉽지는 않았어요. 그림을 그리는 것과 입체를 다루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니
까요. 그런데 한 선생님께서 ‘그림과 조각은 다른 게 아니다. 평면이 여러 개 겹치면 그게 입체가 되는 것이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입체도 잘할 수 있다’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다 하나로 통한다는 말씀, 저 이 말씀을 귀담아 따르고 있어요.
저는 아내와 결혼을 하면서 세례를 받았어요. 종교가 없었는데, 장인께서 결혼을 하려면 ‘신자가 돼야 한다’고 하셔서요. 아내와 저도 젊은 작가로서 미술작품 작업을 했는데요, 먹고 살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내는 ‘들숨날숨’이라는 잡지사의 기자로 일을 시작했죠. 당시 잡지사에 조광호(시몬) 신부님이 계셨는데, 저희 부부가 조각을 전공했다는 걸 아시고 저희를 신부님 작업실 조수로 부르셨어요. 한마디로 얘기하면 먹고 살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거죠.
교회미술 작업의 시작
당시는 전국에서 성당을 많이 짓던 시기였어요. 교회미술 작업 의뢰도 많이 들어왔어요. 한번은 어느 성당에 설치할 작품을 싣고 가는데 다른 성당으로 간 적도 있어요. 그만큼 여러 곳의 성당에서 작업했어요. 그러다가 아예 작업실 직원으로 들어갔죠. 그러면서 교회미술을 접하게 됐어요. 사실 처음에 교회미술 작업 시작할 때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뭐 십자고상은 십자가에다가 사람 갖다가 걸어놓으면 되는 거지, 저게 무슨 예술이냐’ 이런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교회미술 작업을 하면 할수록 ‘이게 그냥 십자가가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상하게 하면 할수록 좀 매력을 느껴요. 요즘엔 교회미술 작업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교회미술에 대한 인식이 바뀐 계기가 있었어요. 2003년에 가톨릭미술가회에서 유럽 현대 성당 순례를 했는데, 제가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1950년대 이후에 지어진 성당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당시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작품이 성당에 있었어요. 스위스의 한 성당에는 미로며 마티스, 샤갈 등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작가들의 작품이 있었어요. 문손잡이, 난간 하나가 대가들의 작품이었어요. 같이 갔던 최종태(요셉) 선생님께서 가톨릭 미술, 특히 토착화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셨는데, 사실 당시에는 무슨 말씀인지 잘 몰랐지만 ‘교회미술도 해볼 만하겠다. 내 인생을 바칠만한 분야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조 신부님 작업실에서 10여 년을 지내다 아내와 나름 독립을 했어요. 2000년대 후반이었는데, 아내와 함께 인천교구의 영종성당 성물을 맡게 됐어요. 사실 조금 겁이 났지만, 당시 본당 주임 신부님이 영성이나 종교적인 면은 채워주겠다고 하셔서 설계부터 작업을 같이 했어요. 영종성당을 기회로 자신감을 얻게 됐어요. 이후로 50여 곳의 성당 성물 작업에 참여하고 있어요.
성당의 성미술을 총괄하는 디렉터가 되고파
지금은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많이 하고 있어요. 조 신부님께 어깨너머로 배웠는데 처음에는 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름 큰 매력을 발견했어요. ‘우연의 효과’라고 할까요? 나름 어떻게 빛이 나올 것이라고 구상을 해 스테인드글라스 설치하지만, 빛은 제가 만드는 것이 아니기에 우연적인 효과가 있어요. 하느님께서 만드신 빛이 스테인글라스를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비치는 거죠. 시간과 계절에 따라 들어오는 빛이 다르기에 스테인드글라스로 보이는 빛도 항상 달라요.
우리나라 성당에도 그 성당에서만 볼 수 있는 교회미술 작품이 하나씩 있으면 좋겠어요. 본당 신자들도 자부심을 느끼고 다른 본당 신자들이나 일반인들도 찾아올 수 있게요. 그리고 스토리가 있는 교회미술 작품이 많이 생기면 좋겠어요. 제가 최근에 베네딕토 성인상을 만들었는데요. 성인상에서 주교의 권위를 상징하는 목장을 뺐어요. 신자들뿐만 아니라 이웃 주민들에게 열린 공간을 추구하는 수도회의 생각을 반영한 거죠. 이렇게 이야기가 있는 많은 작품들이 만들어지면 좋겠어요.
그동안 성당 성미술 작업을 하면서 성당의 전체적인 공간과 교회미술 작품의 조화를 조율하는 디럭터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본당 신부님이 이런 것을 다 조율하기에는 건축이라든지 성미술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요. 성당을 신축하든 개조하든 전체적으로 성당을 바라보고 참여 작가들과 의견을 조율해 조화롭게 성물을 배치하는 나름 아트 디렉터가 필요한 거죠. 몇 개 성당에서 이 역할을 맡아 작품을 조율하고 실제 저도 작품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는데요, 전체적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어요. 앞으로 이런 역할을 계속하고 싶어요.
◆ 장동현(비오) 작가는
197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94년 서울예대 시각디자인과, 1999년 수원대 조소과, 2003년 고려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2004년 첫 개인전을 비롯해 5차례 개인전을 열고, 2022는 광주가톨릭박물관 초대전을 비롯해 70여 차례의 기획 및 단체전에 참여했다. 가톨릭대를 비롯해 독일 에센 성미카엘 성당, 인천교구 영종성당 등 50여 곳에 성미술 작품을 봉헌했다.
최용택 기자 johncho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