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정하상(바오로, 1795~1839) 가족은 한국교회의 가장 대표적인 순교자 가문으로 꼽힌다.
성인을 비롯한 아버지 복자 정약종(아우구스티노, 1760~1801)과 어머니 성 유조이(체칠리아, 1761~1839), 형 복자 정철상(가롤로, ?~1801) 및 동생 성 정정혜(엘리사벳, 1797~1839)가 순교의 영광을 안았다.
정약종은 1786년 무렵 중형 정약전(1758~1816)으로부터 교리를 배웠다. 세례 이후에는 교리를 가르치고 연구하며 실천에 몰두했다.
첫 부인 이씨와의 사이에 정철상을 아들로 두었으나 얼마 뒤 사별하고 이후 유조이를 두 번째 아내로 맞았다. 유조이는 곧 정하상과 정정혜의 친모가 된다.
양반 출신 지도층으로 제사 문제 등 가문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었던 정약종은 서울에서 경기도 광주로 이주하는 용단을 내렸다. 이후 지역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며 최초의 한글 교리서 「주교요지」를 완성했다.
1794년 말 주문모 신부가 입국하자 주 신부를 도와 교회 일을 처리했으며 주 신부에 의해 명도회(明道會) 회장에 임명된 후 신앙 공동체 유지와 교육, 선교를 위해 노력하는 등 지도층 신자로 활동했다. 그가 쓴 한글 교리서는 주 신부 승인을 받아 신자들에게 보급됐다. ‘초기 한국교회 교부’로 불릴 만큼 교회 공동체의 중심에 서 있었던 모습이다.
1801년 신유박해로 체포됐으나 문초 중에도 오로지 천주교 교리의 정당성을 설파했고, 체포된 지 15일 만에 사형을 선고받아 1801년 4월 8일 순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