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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물리학자 김도현(바오로) 신부

정리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사진 박원희 기자
입력일 2021-12-21 수정일 2021-12-22 발행일 2021-12-25 제 3275호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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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법칙으로 설명 불가한 영역… 그 속에 주님이 계시죠”


카이스트 석·박사 학위 받고 재직
주변 지인 갑작스러운 비보에 충격
하느님께 기도하며 사제의 길 결심
2015년 사제품 받고 연구 활동 매진

‘과학과 종교 간 대화’ 주된 목표
과학에도 신앙의 영역이 있으며
신앙도 과학의 도움을 받아야
가톨릭교회는 진화론도 수용 가능

초자연적 영역 속에는 ‘기적’이 존재
교회가 존립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

김도현 신부는 “신부이면서 동시에 과학자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과학과 교회가 각각 답할 수 있는 영역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장병일 편집국장(이하 장 국장) : 과학자이며 사제인 신부님을 뵐 준비를 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카이스트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대 이론물리학연구센터에 재직 중이던 ‘뛰어난 물리학자가 사제의 길을 택했다. 왜 그랬을까? ’입니다. 사제의 길을 택하신 동기가 궁금합니다.

▲김도현 신부(이하 김 신부) : 제 생애 약 50년 중 30여 년간은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묻고 그분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나머지는 그분을 실제로 만나서 같이 사는 과정이라고 할까요.

지난 1976년 아버지께서 갑자기 뇌종양 수술을 받으시고 기적적으로 살아나신 것을 계기로 부모님과 제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학창 시절, 성적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친구들을 보면서 저의 내면에선 인간은 왜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죽음 이후 세상은 어떠한지 등의 질문이 밀려들었습니다. 박사 학위를 준비하던 중 가르멜회 수녀님으로부터 예수회 입회를 권고 받았지만 갈등도 했었고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카이스트 동기 중 가장 천재라고 평가받던 친구가 자살했다는 소식에 울며 기도하던 중 한 성경구절이 머릿속을 스쳐갔습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마르 8,35) 순간 세상에서 무엇을 가진다한들 결국 하느님 품에서 제대로 죽는 게 가장 좋은 삶이고, 다른 이들 또한 그렇게 잘 죽도록 도와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결심했습니다. “주님, 이제 저는 그냥 무조건 당신을 따르겠습니다.”

-장 국장 : 우주대폭발 이론을 발표한 조지 르메트로 신부, 지동설을 주장한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신부 등 가톨릭 사제들 중에도 과학 분야에서 의미있는 연구업적을 남긴 분들이 많습니다. 신부님께서도 2015년 사제품을 받으시면서 이른바 ‘과학을 연구하는 사제의 길’로 접어드셨는데요. 한국에서 전문 과학자(이론물리학자)이자 가톨릭 사제인 분은 김 신부님이 유일하신데요. 어깨가 많이 무거울 듯합니다.

▲김 신부 : 입회 후 수도자로서 수련도 받고 교회법에 정해진 대로 6년간 신학·철학을 공부하는 과정만 10여 년입니다. 10년이란 자연과학이나 공학 등의 분야에서는 엄청난 변화가 이뤄지는 시간이죠. 다시 그 분야에 뛰어들어 그 흐름을 따라간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잠을 줄여 더욱 힘껏 연구하고 논문을 쓰는 방법밖엔 없었죠.

그런데 공백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 논문이 좋은 평가를 계속 받는 것을 경험하면서 ‘아, 주님께서는 내가 과학자 신부가 되는 걸 원하시는구나’라고 확신했습니다. 현대 들어서 과학과 신학 모두 너무 전문화되다 보니, 양쪽을 다 다룰 수 있는 분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제 연구 활동의 가장 큰 목표는 ‘과학과 종교 간의 대화’입니다. 이러한 활동을 위해선 양쪽 분야를 다 잘 알아야 하기에, 여러분들의 많은 기도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김도현 신부는 “신부이면서 동시에 과학자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과학과 교회가 각각 답할 수 있는 영역이 따로 있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장 국장 : 역사적으로 교회와 과학 분야의 관계는 어떠했을까요. 일례로 교황청 천문대가 100여 년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고, 종교에 관계없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들의 대화와 소통의 구심점이 되고 있는 교황청 과학원의 활동도 상당히 활발했었는데요.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도 과학원 회원이었고요. 비오 12세 교황께선 “과학이 발전할수록 하느님을 더 발견하게 되기에, 우주의 창조와 진화를 설명하는 현대과학은 종교와 모순되지 않는다”라는 말씀을 하셨고,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선 갈릴레이를 복권하셨습니다. 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진화론과 빅뱅이론이 창조론과 모순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과학을 배척한다거나, 과학자들을 억눌렀다거나 하는 오해와 편견이 있었고, 또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는 건 매우 안타깝습니다.

▲김 신부 : 우리가 현재 쓰고 있는 달력, 보통 그레고리오력이라고 부르죠? 그걸 만드는 분들이 바로 예수회 신부님들입니다.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인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활동할 무렵에만 해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과학자들이 있는 집단이 바로 가톨릭 사제단이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그 어떤 종교보다 더 과학을 선도했으며 과학을 향해 열려 있고, 그 전통은 지금도 여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과 종교의 관계 안에서 교회는 많은 오해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갈릴레오 재판은 이른바 교회와 과학자 집단 간 갈등의 시발점으로 인식되고 있죠. 저는 긴 시간에 걸려 이 재판 관련 내용을 공부하고 논문으로 쓴 적이 있는데요. 재판에서 교회 권력이 평신도의 연구 발표 내용을 강압적으로 막은 부분은 틀림없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교회는 갈릴레오가 주장하는 지동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는 학설이 완벽하게 확립됐다는 증거가 없으니 발표를 미루라고 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교회 또한 과학 분야에 있어서 뛰어난 수준을 갖추고 있었기에 교회가 뭘 잘 몰라서 강압적으로 막은 것만은 아닙니다.

그런데 프랑스 시민혁명을 기점으로 1800년대 들어서면서 계몽주의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무신론적인 성향들이 교회를 공격하는 상황이 심각해졌는데요. 교회는 그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그저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다보니 비뚤어진 인식들을 개선할 기회를 놓친 면이 있습니다.

본지 장병일 편집국장이 12월 16일 가톨릭신문사 서울본사에서 김도현 신부를 만나 대담하고 있다.

-장 국장 : 그렇다면 과학과 종교, 보다 구체적으로 과학과 신학은 대립과 충돌이 아니라 조화와 상생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할 텐데요. 하지만 각각은 너무나 다른 분야 아닙니까? 흔히 과학 만능주의자들은 우리 삶에서 종교는, 신앙은 필요없다고도 주장하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던져보겠습니다. 과학이 신앙에 도움이 됩니까?

▲김 신부 : 아이작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 이 한 가지 수식만으로 우리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단순한 법칙 하나로 많은 것을 명료하게 설명하는 물리학에 저도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물리학만으로는 만유인력이 왜 그 정도의 크기인지, 왜 작동하는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 3차원이라는 것을 밝혀주지만 대체 왜 3차원이어야 하는 지는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시간이 왜 1차원이어야 하는 지도 알 수 없죠. 물리학은 시간과 공간, 질량 등등의 기본적인 것들이 주어져 있다는 전제 하에 각종 현상들을 잘 설명해주지만, 그 시간이나 공간 등이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주지 못하는 거죠. 이런 부분에 답하기 위해선 철학에서 말하는 존재론, 형이상학의 질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즉 신앙에 관련된 질문이 됩니다. 과학에도 신앙의 영역이 있고, 신앙도 과학 영역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과학은 신앙을 심화하고 하느님을 알아 가는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신경을 통해 창조주를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 ‘창조주는 도대체 뭘 어떻게 하신 분이실까?’라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에 관해선 과학이 설명해줄 수 있습니다. 제가 가톨릭 신부이면서 동시에 과학자로 살아가는 것은, 과학이 답할 수 있는 영역이 있고 교회가 답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장 국장 : 이 질문도 아주 많이 받으셨을 듯 한데요. 인간은 창조됐습니까? 진화됐습니까? 또한 과학은 하느님을 증명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김 신부 : 사실 가톨릭교회는 창조론이라고 부르는 것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개신교회가 주장하는 것이지요. 가톨릭교회는 진화라는 과정을 거쳐서도 하느님께서 세상만물을 창조하실 수 있다는 열린 시각을 갖추고 있습니다. 진화법칙도 하느님께서 주신 거라면 당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거죠.

교회는 21세기의 과학적 언어와 과학이 만들어낸 법칙 등을 수용하면서 얼마든지 우리의 신앙을 단단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진화론은 완성된 이론이 아닌, 계속적으로 그 증거를 수집해서 발전하려 애쓰는 과학의 한 분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진화론의 입장이 100% 맞다는 전제로 질문을 해봅시다. 진화 단계 중 언제부터가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인가요? 언제부터 영혼이 개입되나요?

교회는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받은 유일한 존재라고 가르칩니다. 하느님께서는 순수하게 영적인 존재이시기에 자연과학의 범주 안에 들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요, 하느님께서 자신의 본성과 무관한 창조물을 만드셨을까요? 어느 물질들 어느 생명체들이든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하느님의 속성을 약간이라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장 국장 : 일반인들은 자주 기적이라는 초자연적이고도 불가사의한 현상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과학적인 개념과 언어로 설명이 안 되는 것이라며 믿지 못하겠다고도 합니다.

▲김 신부 : 기적은 존재합니다. 그런 기적이, 과학이 설명하는 자연 세계를 넘어선 초자연적인 영역이 있다는 것이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요? 바로 하느님께서 계신다는, 그분이 원하실 때 그분만이 하실 수 있는, 자연법칙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뭔가가 있다는 겁니다. 교회가 존립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기도 하죠.

그런데 역사 안에서 그런 기적이 그릇되게 활용되는 경우가 생겨나다 보니, 특히 한국교회는 의도적으로 기적을 널리 알리는데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온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좀 더 강조해도 된다고 봅니다.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영역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것이니까요.

김도현 신부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물리학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후, 서울대 이론물리학연구센터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예수회 입회 후 서강대 신학대학원에서 신학 석사, 필리핀 로욜라신학대학에서 교회신학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 교수 및 가톨릭대 신학대학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해엔 저서 「신학, 과학을 만나다 – 현대 과학의 과점에서 본 그리스도교 신학의 새로운 해석」을 펴냈다.

정리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사진 박원희 기자 pertersco@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