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세상살이 신앙살이] (538) 미소에 담긴 어머니 마음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20-06-02 수정일 2020-06-02 발행일 2020-06-07 제 3198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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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수도회의 후배 신부님 어머니께서 서울에 오셨다가 나를 잠깐 만나고 지방으로 내려가신 적이 있습니다. 정말 어머니께서는 간단히 차 한 잔 마신 후, 혹시 내 시간을 빼앗을까봐 조용히 가셨습니다. 가시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그 날 옛날 잊지 못할 추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예전에 수도회의 성소자 담당던 해, 여름에 있었던 일입니다. 성소자 프로그램으로 2박3일간 강원도 설악산 산행을 떠날 계획을 세웠는데, 유난히 많은 성소자들이 캠프에 참석하는 바람에 혼자서는 감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수도회에 요청을 했더니, 젊은 형제들이 캠프 봉사자로 투입됐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다 준비가 될 즈음, 얼마 되지 않는 캠프 참가비로는 2박3일을 지내는 것이 무리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한 번 해 보자는 생각에 과감하게 프로그램을 추진했습니다. 싸고 괜찮은 숙소를 찾았고, 집결 시간부터 이동 시간, 프로그램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오는 시간까지, 거의 모든 준비를 다 마쳤는데, 단 한 가지! 먹거리가 문제였습니다. 2박3일 동안 총 9끼의 식사를 하는데, 교통비와 숙박비를 다 빼고 나니, 참석자들의 한 끼니 식사비용을 2천 원 정도 밖에 책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난감하게 지내던 때에, 캠프 시작하기 일주일 전에 후배 신부님의 부모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함께 식사를 하면서, 후배 신부 어머니께 성소자 캠프의 준비 상황과 금전적 어려움을 말씀 드린 후, 2박 3일 여름 캠프 주방 봉사자로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신지 여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두말도 하지 않고, ‘예, 그럴게요’, 하며 수락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음 놓고 성소자 여름 캠프를 떠날 수 있었고, 어머니는 캠프장 숙소에서 병아리 눈물만큼의 식대를 받고 땀을 뻘뻘 흘리며 장정들의 음식을 준비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선 첫째 날 저녁 식사를 다 차려 주신 후, 둘째 날 새벽 산행을 가는 우리 일행을 위해 밤새 한숨도 주무시지 않고 아침과 점심 식사로 김밥까지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둘째 날 저녁, 설악산에서 하산하고 왔더니 숙소에는 풍성한 저녁 식사도 차려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2박 3일 성소자 여름 캠프는 무사히 잘 끝났고, 서울에서 모두가 다 헤어질 때였습니다. 나는 너무나도 죄송스러운 마음에,

“정말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잘 끝났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더 환한 웃음을 웃으시며 말했습니다.

“아뇨, 정말 내가 더 기뻤어요. 우리 젊은 형제님들이 매 끼니마다 잘 먹고, 너무나도 행복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했어요. 아차, 그리고 저도 약속할게요. 우리 성소자 형제님들을 위해 늘 기도하겠다고.”

그리고 어머니는 조용히 가셨습니다. 그 무더운 여름, 혼자서 25명의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힘들었네, 피곤하네’ 등의 어떤 한 마디 불평불만도 없이, 어머니 특유의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유유히 가시는 그 뒷모습을 보면서 저는 몇 번이고 90도로 인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그 해 겨울, 수도회에서 가장 많은 형제들이 수도회에 입회했고, 종신서원을 받고 서품을 받았습니다.

그 해 여름 2박3일 동안의 성소자 여름 캠프! 성소자들에게는 잊지 못할 행복한 시간이었고, 성소 담당자였던 나에게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었던 일정이었지만, 어머니에게는 아마도 매 끼니가 고난의 일정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미소 가득한 얼굴로, 매 끼니를 준비해 주신 어머니의 사랑에 형제들은 몸과 마음이 무럭무럭 잘 컸던 것입니다. 지금도 생각해 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가장 공들인 부분은 아마도 어머니의 미소가 아닐까…. 그 미소만 보면 왜 그리도 마음이 평화로워지는지!’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