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5월… 성모님 주보로 모신 113년 한옥 성당 가볼까
서울·경기 서북부 세 번째 본당
한국 대표 한옥 성당으로 평가
루르드 동굴 본뜬 성모당 갖춰
우리가 새롭게 맞은 5월은 신록의 계절이면서 아름다운 달이다. 교회에서는 생명으로 충만한 5월을 성모 성월로 정하여 모든 신앙인의 모범이신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며 본받고자 노력한다. 성모님은 모든 것에 앞서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따라 한 평생을 충실히 사셨다. 우리가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삶을 가꾸기 위해서는 자주 성모 마리아의 삶과 신앙을 묵상하면 좋을 것이다.
성모 성월을 맞아 찾은 행주성당의 주보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승천’이다. 이 성당은 로마에 있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과 특별한 영적 유대를 맺고 있다. 교황청으로부터 성모 순례지로 지정받아 정해진 날에 순례를 하면 전대사 특전을 받을 수 있다.
의정부교구 행주성당은 서울과 맞닿은 행주산성 아래 마을에 있다. 덕양산에 있는 행주산성은 임진왜란(1592년) 때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으로 널리 알려진 역사적인 장소다. 한강 하류에 위치한 행주 포구는 1900년 초만 해도 한강을 통한 수로 교통의 요지로 많은 사람이 살았다.
행주성당의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서울 중림동 약현본당 주임 두세 신부(Ducet, Camille-Eugene, 1853~1917, 파리외방전교회)는 오랜 박해가 끝나고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으로 신앙의 자유가 찾아오자 1899년 행주에 공소를 설립하였다.
행주성당은 명동본당과 약현본당에 이어 서울·경기 서북부 지역 세 번째 본당으로 1909년에 설립되었다. 초대 주임 김원영 신부(아우구스티노, 1869~1936)는 부임 이듬해 기와집 성당을 신축하여 뮈텔 주교(Mutel, 1854~1933)의 주례로 축복식을 거행했다. 당시 행주산성 아래에는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있었는데, 기와집 성당은 동네 집들과도 조화를 이루어 낯설지 않았다.
1910년에 5칸으로 신축된 성당은 1928년에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좀 더 높은 곳으로 이전하였고, 1949년에는 늘어난 교우들을 위해 2칸을 더 증축하였다. 성당 이전과 증축을 하면서도 첫 건축의 상량 목부재를 포함한 기존의 부재들을 대부분 재사용하였다. 그 결과 2010년에는 문화재청으로부터 종교 건축물로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제455호)로 지정되었다. 2015년에는 성당의 초기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 보수 작업을 진행하여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성당의 출입구 위는 팔작지붕이며 제대 쪽은 맞배지붕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모습이다. 내부에서는 유교 전통에 따라서 남녀 좌석으로 구분하기 위해 세운 가운데 기둥을 볼 수 있다. 행주성당은 성공회 강화성당(사적 제424호)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한옥 성당 건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또한 행주본당은 교회와 주변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공소였다가 본당이 되었지만, 다시 공소로 되었다가 본당으로 승격된 역사를 갖고 있다.
성모님께 봉헌된 행주성당에 1910년 초기 성당 건립 때부터 프랑스 루르드 성모상을 모신 후, 교우들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모범인 성모님을 특별히 공경하며 본받으려 이곳에서 기도한다. 행주본당은 2016년에는 성당 마당에 루르드 성모 발현지의 동굴을 본뜬 성모당도 만들었다.
대구대교구 성모당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붉고 검은 벽돌로 쌓아올린 성모당에는 성모상이 모셔져 있으며, 위에는 “EX VOTO IMMACULATAE CONCEPTIONI”(티없이 잉태되신 분께 드리는 서약에 의해서)라는 라틴어가 새겨져 있다.
성모당 옆에는 행주본당 100주년(1909~2009)을 기념하여 건립한 100주년 역사 기념관이 있다. 기념관에는 경당과 유물 전시실, 교구 사제 숙소 등이 있다. 경당 뒤쪽의 유물 전시실 벽은 전체가 유리벽으로 되어 있어서 밖에서도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성당의 오래된 기도서와 자료, 성물과 유물을 포함한 옛 성당의 대들보와 벽돌 등 건축 자재도 함께 전시되어 있다. 경당 창문에는 천사들이 하느님 나라에서 연주하는 유리화가 장식되어 있어, 여기에서 봉헌되는 미사가 천상의 구원 잔치를 미리 보여주는 것임을 알려준다.
「행주성당 100년 이야기」(2011년 간행/강종민 글·그림)는 성당의 오랜 역사를 속삭여주는 박물관처럼 보인다. 우리나라 천주교회사부터 행주성당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정겨운 사진과 함께 이야기 형식으로 엮은 책이다. 이 책은 근·현대 순교자로 하느님의 종 이순성 신부(안드레아, 1895~1950년 행불)와 윤의병 신부(바오로, 1889~1950년 행불)가 사목했던 행주성당 곳곳에 순교자의 땀이 배였다는 것을 알려준다.
같은 책의 후반부에서는 행주에 숨결을 불어 넣은 성직자를 소개한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으로 우리나라에 파견되어 한 평생 사랑의 선교사로 살고 있는 두봉 주교(Rene Dupont, 1929~)의 이야기다. 그는 초대 안동교구장직을 수행한 후 은퇴하여 1991년부터 2004년까지 14년간 행주공소에 머물면서 신앙의 공동체를 가꿨다. 매일 미사와 성사를 집행하고 교우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과도 친교와 사랑을 나누며 소박한 삶을 이어갔다. 행주 사람들은 두봉 주교의 모습을 통해 오래 전 우리나라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명을 바치면서까지 헌신했던 선교사들과 본당의 역대 사목자들을 떠올렸을 것이다. 또한 그는 행주공소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알리고자 노력하였다. 그 결과 행주공소는 2004년 의정부교구의 출범과 함께 다시 본당이 되었다.
이곳에 성당이 건립되었던 그날처럼, 요즘 행주성당 주변에는 매화와 복사꽃, 민들레와 들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봄꽃과 물이 오른 나무들 사이로 한강물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흐른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행주성당이 있는 마을을 휘돌아가면서 망망대해 서해로 들어간다. 물이 쉼 없이 흐르는 것처럼 하느님께 대한 신앙도 신앙선조들과 순교자. 성인과 복자. 선교사와 성직자 수도자들, 교우들의 좋은 표양을 통해 우리에게 이어져 와서 후손들에게로 흘러 갈 것이다.
■ 성모 순례지 행주성당 안내
주소: 고양시 덕양구 행주산성로 144번길 50
전화: 031-974-1728
주일미사: 오전 9시·11시, 토요일 19시
평일미사: 오전 11시(월화수목금)
성모신심미사: 매월 첫 토요일 오전 11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