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향한 사랑으로 아기의 모습으로 ‘강생의 신비’ 기념
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은 인간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신 것을 기념한다. 전례 주년의 중심축이 되는 이 시기는 전례에서도 깊이 들여다봐야 할 전례적 의미들이 풍성하다. 성탄 전례에서 눈여겨 볼 상징들을 알아본다.
■ 구유
다른 전례 시기와 비교할 때, 성탄 전례에서 크게 다른 점은 ‘구유’다. 교회에서 공경받고 있는 구유는 ‘베들레헴의 구유’이며, 그다음이 로마의 성모대성당(Santa Maria Maggiore) 구유다. 현재 이 대성당에는 예수가 탄생한 구유가 모셔져 있다. 5개의 무화과나무 판자로 만들어진 구유는 예루살렘 출신 테오도로 1세 교황이 모셔 왔다.
구유 경배 예절을 처음 행한 것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다. 성인은 이스라엘을 순례한 후 베들레헴의 마구간을 재현하고 싶은 사목적 열망을 품었다. 호노리오 3세 교황에게 청해 이를 허락받은 성인은 1223년 성탄 때, 로마 인근 그레치오(Greccio)에서 동료들과 은둔 생활을 하던 중 베들레헴의 외양간을 본뜬 마구간을 만들고 구유 경배 예절을 거행했다. 이로써 구유에 대한 신심이 증가했고, 작은 모형 마구간을 만들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풍속이 전 세계로 퍼졌다.
구유 예절은 요즘 성탄 전야 미사 전에 예수의 오심을 몸으로 느끼게 하는 예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예절 중 말씀 전례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며 함께 기뻐하는 데 목적이 있다. 아울러 성탄을 준비하며 각자가 결심하고 회개 반성한 것을 성탄 성야 미사 말씀의 전례에서 하느님 말씀을 들으며 다시 한번 결심하는 시간이다.
■ 세 대의 미사
주님 성탄 대축일에는 성탄 전야, 새벽, 그리고 낮미사 등 세 대의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
성 레오 1세 교황 시대까지 로마 교회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오전 9시경 한 번의 낮미사만을 거행했다. 로마 성모대성당은 베들레헴의 구유를 모신 후 예수님 탄생 동굴을 재현한 구유 오라토리움(기도소)을 마련하고 베들레헴에서 거행되는 것과 비슷한 밤 전례를 지내기 시작했다. 여기에 교황이 참석하면서 성탄 밤 미사의 뿌리가 됐다.
「에테리아 여행기」에 따르면 5세기 초 베들레헴에서는 한밤중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세운 대성당 내 성탄 동굴에서 미사를 거행했다. 신자들은 새벽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잠깐 쉰 다음 두 번째 미사에 참례했다고 한다. 전례학자들은 “이 거행을 로마교회가 본받은 것으로 보인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새벽 미사는 마지막으로 생겼다. 로마에 거주한 비잔틴 권력가들은 12월 25일 팔라티노 언덕 아래에 있는 성녀 아나스타시아 성당에서 성녀 기념일을 지냈다. 교황은 이들을 존중하는 의미로 성탄 미사 주례를 위해 성 베드로 대성당에 가기 전 이곳에 들러 성녀 아나스타시아를 위한 미사를 봉헌했다. 이 관습이 성탄 새벽 미사의 유래다.
세 대의 미사에 대해 성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은 “주님의 너그러우심에 힘입어 우리는 오늘날 미사를 세 번 지낼 수 있다”고 확인했다. 성탄에 세 번 미사를 거행하는 관행은 여러 「성무 집전서」 안에 수용되고, 또 로마교회 전례가 서유럽 전역에 퍼짐으로써 정착됐다.
성탄 밤 미사의 특징적 요소는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함을 전하는 루카복음 2장 1-14절의 내용이다. 새벽미사는 목자들이 예수에게 경배한 내용을 복음으로 읽기에 ‘목자들의 미사’라고도 불린다. 이 미사 안에서 빛에 대한 상징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낮미사는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요한 1,14)는 요한복음 서언이 낭독되며 성탄 축일의 정점을 이룬다.
■ 성 레오 1세 교황의 성탄과 공현 강론
성탄 시기의 ‘예수 성탄 대축일’, ‘주님 공현 대축일’ 그리고 12월31일 성무일도 독서의 기도 제2독서로 읽히는 것이 성 레오 1세 교황(재위 440-461)의 강론이다. “성탄을 통해 하느님 구원 신비가 시작되었고 따라서 성탄은 구원의 성사”라고 밝힌 그는 성탄 축일에 대한 신학을 정립한 인물로 지목된다. 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이자 인간이라는 신앙에 맞서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거나 인성을 부인하는 이단들이 나타나자, ‘예수님야말로 참 하느님이요 참 인간이라는 육화 신비가 성탄 안에 나타나고 있음’을 드러냈다.
성 레오 1세 교황은 성탄 강론 10개와 주님 공현 강론 8개를 전했다. 가톨릭대 전례학 교수 윤종식(티모테오) 신부는 “주님 성탄 대축일을 교회가 공식적으로 도입한 것이 4세기 중엽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성 레오 1세 교황의 성탄과 공현 강론은 파스카 신비와 연결된 강생의 신비를 밝혀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 ‘교환의 신비’
주님 성탄 대축일 전야미사 예물 기도에서는 특이한 상업 용어인 ‘교환의 신비’가 등장한다. 바로 “~ 저희가 이 거룩한 교환의 신비로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게 하소서”라는 이 기도문은 6세기경 전례 기도를 모아놓은 베로나 성사집에서 유래한다. ‘교환’이라는 용어가 ‘로마 미사 경본’에서 21회 등장하는데, 주로 성탄과 사순과 부활 시기의 ‘예물 기도’와 ‘영성체 후 기도’에 사용된다.
신학 용어가 아닌 상업 용어인 ‘교환’(라틴어 commercium)이 사용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의 「연설집」,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편지,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의 「설교집」 등에서 ‘교환’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대림 제1주간 화요일 독서기도의 제2독서에서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는 “하느님의 아들은 사람에 대한 사랑 때문에 사람이 되시고 영혼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인간 영혼에 결합하십니다. …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되시어 죽으셔야 했습니다. 이를 통하여 사람에 대한 사랑 때문에 하느님의 아들은 죽음을, 사람은 생명을 얻는 놀라운 교환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또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는 ‘순교자들의 천상 탄일에 관한 설교’에서 “십자가에서 큰 교환이 이루어졌으니, 거기서 우리의 몸값이 치러졌습니다”라고 했고, 성주간 월요일 독서의 기도 제2독서는 “그분은 우리와 놀라운 상호 교환을 이루셨습니다. 우리의 죽음은 그분의 것이 되었고, 그분의 생명은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라고 분명히 밝힌다.
윤종식 신부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자신의 것으로 삼기 위해 사람이 되는 강생을 하셨고,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여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는 이상한 교환을 하셨다”며 “교회는 이를 ‘교환의 신비’라고 기도하며 기억한다”고 설명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