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섬기는 마음으로…우리는 낮은 곳에 계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아기 예수님은 외양간에서 태어났다. 냄새나고 흙먼지가 묻어있는 초라한 아기 예수님을 거들떠보지 않았을 사람들. 동방박사들은 구세주의 빛을 따라 먼 길을 걸어 하느님의 아들을 찾아냈고 비로소 그리스도의 빛이 온 세상을 밝힐 수 있게 됐다. 그리스도인이 향해야 할 길을 알았던 이들이야말로 가장 밝은 빛을 선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성탄을 기다리는 12월 14일, 대전교구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회장 정기호 요셉, 담당 노승환 요셉 신부, 이하 대전 빈첸시오회) 봉사자들은 보잘것없는 곳에서, 가난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신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경배하고 있었다.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작은 공간에서는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밝은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 세상을 구원하는 빛
“다음 주가 동지인데 팥죽을 준비하면 어떨까요?”
“형제자매님들은 밥을 좋아하시니, 식사는 기본적으로 준비하고 팥죽도 끓여드리지요.”
12월 14일 오후 5시, 대전역 중앙시장의 한 식당. 대전 빈첸시오회의 226차 노숙인 식사를 준비하는 현장에서는 벌써 다음 주 식사 메뉴 논의가 한창이다. 무료로 제공하는 음식이지만 노숙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가장 맛있게 대접하기 위한 봉사자들의 배려가 묻어난다.
대전 빈첸시오회 노숙인 식사 나눔은 4년 전, 코로나19가 기승이던 때 시작됐다. 사람들의 일상이 멈추면서 가장 가난한 이들이 가장 크게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정기호 회장은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무료급식이나 도시락 나눔이 크게 줄어, 노숙하시는 분들은 정말 먹고 살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코로나19 팬데믹 동안만이라도 따뜻한 식사를 대접하고자 식사 나눔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음식을 포장해서 전달했지만 보관할 곳이 없어 금세 식어버렸다. 식당으로 노숙인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지만 다른 손님들이 불쾌감을 표하는 탓에 그마저도 녹록지 않았다. 그러던 중 식당을 하는 신자가 장소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했고 그렇게 시작된 노숙인 식사 나눔은 226차가 됐다.
정 회장은 “2020년 겨울에 시작해 다음 해 주님 부활 대축일까지만 해보자고 계획했는데, 막상 끝날 무렵이 되니 허탈해지면서 함께 식사했던 분들의 얼굴이 눈에 밟히더군요”라며 “그래서 회원들과 논의 끝에 매주 토요일 저녁에 식사 대접을 계속하게 됐다”고 밝혔다.
매주 식사를 하는 노숙인은 40명가량. 빈첸시오회 회원들은 직접 대전 역사나 다리 밑 등 현장을 다니며 집이 없는 노숙인들을 조사,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어려운 분들을 매주 초대하고 있다.
이날 메뉴는 닭볶음탕이었다. 탕은 물론이고 반찬과 디저트까지, 넉넉한 한 상이 차려졌다. 식사 전 기도를 마친 뒤, 봉사자들은 각자의 접시에 닭볶음탕을 담아주며 근황을 묻는다.
“요즘에도 다리 밑에서 주무세요? 추울 텐데 쉼터로 가시지. 담요나 이불 더 필요하면 말씀하세요.” “내일 눈 온다는데, 전동차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따뜻한 밥과 따뜻한 말 한마디에 얼었던 마음을 녹인 노숙인들은 식당을 떠나며 이렇게 말했다.
“정성을 다해 주셔서 그런지 여기 밥이 제일 맛있어요, 누가 우리한테 이렇게 잘해 주겠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 예수님께서 살아계신 곳
50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작은 식당에는 곳곳에 예수님이 살아계셨다.
노숙인 돌봄 활동에서 4년째 식당 공간을 제공하고 있는 이철옥(크레센시아) 씨는 하느님에게 받은 은총을 보답하고자 나눔을 시작했다.
이철옥 씨는 “제가 하느님께 받은 은총이 너무 많아서 보답하고자 노숙 형제 돌봄활동을 함께하고 있지만 아직 부족한 것 같다”며 “공짜 음식이니 대충 만든다는 마음이 안 드시게 항상 섬기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든다”고 말했다. 노숙인 식사 나눔 봉사를 하며 이 씨는 마음속에 예수님이 살아계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철옥 씨는 “제가 믿는 하느님이 좋아하시는 일이니 앞으로도 항상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베테랑 봉사자 이순례(요안나) 씨에게 노숙인들은 도움을 줘야 하는 이들이 아닌 함께 사는 이웃이다. 이순례 씨는 “저는 노숙 형제 돌봄 활동을 하면서 제가 도와드린다는 것보다 이분들 옆에 있어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부족하지만 제가 이분들과 함께 걷고자 노력한 결과 가족처럼 생각해 주시는 것 같아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순례 씨 또한 노숙인들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다. 이순례 씨는 “이분들을 통해 하느님이 주신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고 전했다.
이길남(바오로) 씨는 오랫동안 노숙 생활을 하다 이곳에서 하느님을 만났다. 항상 따뜻하게 사랑을 전해준 봉사자들을 보며 하느님을 알고 싶어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의 삶은 전보다 행복해졌다.
“60년 전에 학교도 못 다닌 제게 성당 청년회에서 한자를 가르쳐 주셨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또 천주교 신자들을 만났는데 참 잘해주셨어요. 제게 많은 사랑을 베풀어주신 분들의 신앙을 저도 믿고 싶어 세례를 받았죠. 이제는 하느님과 예수님이 저를 지켜준다고 생각하니 제 삶이 참 행복해졌습니다.”
※ 후원 계좌 : 농협 301-0229-0820-41(예금주 천주교 성 빈첸시오회 대전교구이사회)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