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역사속의 그리스도인 - 세계교회사 인물 100選] (40) 수도회 창설자편 (3)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 (상)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04-12-05 수정일 2004-12-05 발행일 2004-12-05 제 2426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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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옷마저 벗어버린 가난의 삶
최초의 탁발수도회 설립
평화의 사도로 사명 다해
『저는 저의 자유로운 결단으로 이제부터 나의 아버지는 더 이상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Pietro Bernardone)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느님이심을 선언합니다. 이제 저는 지금까지 저의 아버지였던 분으로부터 받은 모든 것을 돌려드립니다. 이제 저는 빈몸으로 완전히 새로운 출발을 합니다』

1206년 이탈리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라는 청년은 부모로부터 제공되는 물질적 풍요와 안락한 삶을 거부하고 입고 있던 옷마저 돌려주면서 이같이 가족들과의 이별을 고했다.

그로부터 시작된 「가난과 복음 전파의 삶」은 지금껏 너그러움, 단순하고 천진한 신앙심, 신과 인간을 향한 헌신, 자연에 대한 사랑과 진실한 겸손의 모습으로 사람들안에 전해져 오고 있으며 「중세기에 나타난 가장 사랑받는 성인중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평화의 기도」, 「태양의 노래」 등 주옥 같은 기도문으로도 친숙한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1182?∼1226)는 교황 비오 12세로부터 「또 하나의 그리스도(alter Christus)」로 불릴 만큼 복음 정신을 따르는 청빈과 무욕 무소유의 모습을 보인 성인이다.

또한 그러한 가치는 최초의 탁발수도회인 프란치스코회 설립과 함께 800여년의 역사가 되어 세상 안에 함께 하고 있다.

1181년 혹은 1182년 이탈리아 움브리아 지방의 소도시 아시시 태생인 프란치스코는 포목상을 하는 피에트로 디 베르나르도네와 피카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시시라는 도시 출신의 한 남자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프란치스코이다. 그는 이 세상의 부귀 영화를 추구한 부모의 영향아래 어릴때부터 자연스럽게 그러한 것들에 길들어져 있었다. 그는 부유한 부모가 제공하는 물질적인 풍요를 즐기면서 자랐고 그 역시 부모보다 오히려 더 그러한 세계를 추구했었다』(Thomas von Celano, Erste Lebensbeschreibung des hl?Franziskus, Nr.1).

생애 전반부에 대한 다소 부정적 면모를 보이고 있는 이 문장에서 엿보듯 프란치스코는 젊은 시절 유복한 생활을 했고 화려한 옷에 향락적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뻬루지아와 벌어진 전투에 참여했던 프란치스코는 1202년부터 1203년까지 포로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됐고 1205년 다시한번 전투에 참여했을 때 하느님으로부터 일련의 계시를 듣게 된다.

무기와 전쟁도구들로 가득 찬 궁전과 성에 둘러싸여 있는 곳에서 『이 모든 것이 너와 너를 따르는 사람들의 것이다』라는 음성을 들은 프란치스코는 계속해서 『프란치스코, 종과 주인 중에서 누가 너에게 더 많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라는 질문을 받았고 이에 『당연히 주인입니다』고 답한 프란치스코에게 『그럼 너는 왜 종을 따르느냐. 아시시로 돌아가서 기다려라. 그곳에서 너에게 나의 뜻을 알려주마』라는 내용이었다.

꿈속에서의 체험은 프란치스코의 생애에 상당한 전환점이 되었고 새로운 삶의 시작을 주었다.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는 청빈과 무욕,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 그림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물건을 돌려주는 프란치스코.
아시시로 돌아온 그는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에 몰두하였고 어느날 아시시 산 근처 성 다미아노(San Damiano)성당에 있는 십자가 상으로부터 『가서 무너지려고 하는 나의 집을 돌봐라』는 목소리를 듣게 된다.

글자 그대로 허물어져 가는 성당을 고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던 프란치스코는 성 다미아노, 포르티운쿨라, 성베드로 성당들을 차례대로 고쳐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과제가 「교회의 내적인 삶에 봉사하는 것」이라는 소명을 깨닫게 된다.

가진 옷 마저 벗어버리며 하느님으로부터의 불림을 천명한 그는 1208년 성 마티아 축일에 사도들의 파견에 관한 복음 말씀, 즉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넣어가지고 다니지 말 것이며 식량자루나 여벌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지 말아라. 일하는 사람은 자기가 먹을 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 어떤 도시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먼저 그 고장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거기에서 떠날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 있어라. 그 집에 들어갈때에는 「평화를 빕니다」하고 인사하여라』는 글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어떤 길을 걷기 원하시는지 깨닫게 됐고 하느님의 부르심을 확실하게 인식하게 됐다.

그것은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 청빈한 삶이었고 고통받는 사람들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었으며 또한 평화의 사도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 무렵 자신을 따르는 동료들이 생겨나게 되면서 함께 움막 생활을 하던 프란치스코는 다시한번 하느님의 뜻을 알기 위해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던 중 성서를 세 번 펼쳤는데 이때 발견한 구절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길을 떠날 때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이때 프란치스코는 『우리가 해야될 일과 미래의 우리 형제들이 해야 될 일을 보십시오. 나의 형제여!』라고 외쳤고 한편 함께 했던 동료들은 프란치스코가 그리스도를 복음 안에서 생생히 만나고 있음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주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