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 신자들 교화하고 용기 전해
예언과 악령에 관한 정의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서신을 통하여 각 지체들의 기능을 직분으로 구체화하는데, 코린토 1서 12장 28절에 의하면 그 첫째는 사도요, 둘째가 예언자이며, 셋째가 교사인데, 이들 모두는 말씀의 선포에 종사했고 아마 바오로에 의해 세워진 교회의 기본 구조일 것이다.
예언자는 성령의 영감을 받아 하느님의 이름으로 하느님의 계획과 그분의 뜻을 밝히는 사람을 말하는데, 예언자들의 예언은 신자들을 교화하고 용기를 주고 사람들의 마음에 숨겨진 비밀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예언의 은사는 영혼의 상태를 알게 해주는 은사로써 하느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이루어 지혜로운 삶을 살 수 있게 격려하는 힘을 말한다.
시정되어야 할 요소
수에넨스(L.J. Suenens)는 인간의 삶에 막중한 영향을 주는 예견(豫見)과 지시의 예언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라고 말한다. 예견의 예언은 검증되고 확인되는 경우가 아니면 실천에 옮기지 말아야 한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성령쇄신 안에서 시정되어야 할 요소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예언의 은사를 보이는 봉사자를 교주처럼 대한다’에 12.7%가 응답하였고 8지구의 경우는 20.7%가 그렇게 응답하였다.
예언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것으로 보이는 메시지를 이야기하는 은사이다.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성령에 의해 촉발된 것으로 믿어지는 내적 언어와 생각들을 공유한다. 예언과 함께 주어지는 은사는 그 메시지가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인지를 구별하도록 도와주는 식별의 은사이다. 진정한 예언은 성경, 전통, 교회의 가르침과 결코 배치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해야겠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영은 결코 자기 모순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예언은 특정한 가르침을 우리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시켜 줌으로써 가르침을 재확인시킨다. 모든 은사와 마찬가지로 예언도 그 순수성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예언 또한 성숙한 과정을 거친다. 때문에 모든 예언을 동일한 차원에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어떤 예언자도 자신을 증거 할 수 없고 모든 예언은 그리스도 공동체에 예속되어 있다. 그들은 필요한 경우에 주교의 식별에 순종해야 한다.
수에넨스는 세상에 있는 악령의 존재를 경시하는 위험과, 꼭 필요한 분별과, 교회의 보호 없이 악령과 싸우려는 위험 사이에서 안전한 길을 제시하기 위하여 1980년 초 ‘은사쇄신과 어둠의 세력’을 발표하였다. 그는 이 저서의 서두에 악의 세력이라는 이 문제가 아무리 복잡하고 까다롭다고 해도 교회는 이 문제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데, 왜냐하면 복음에 대한 교회의 성실성과 현재 세계에서 악마의 세력과 맞서 겨루어야 할 의무가 간과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악마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현대의 비판적 견해와 조화되지 않을 위험이 있고, 그것을 부인하면 복음과 교회의 성전(聖傳)과 모순될 위험이 있다. 우리는 무분별한 악마론에 대해서 올바로 식별해야 한다. 또한 교회는 식별의 은사를 식별해야 한다.
은사 쇄신에서 행사하는 식별의 은사를 정신의학이 확증한 인간적인 사실들을 무시하거나 교회의 식별에 의지하지 않고 성령께 직접 호소해도 좋을 기준으로 제시해서는 안된다. 수에넨스는 일반적으로 구마단이 의지하는 식별은 기도 모임의 식별이지, 어떤 고립된 개인의 식별이 아니라고 하면서 이 집단적인 식별조차 충분하지는 못하다고 이야기 한다.
수에넨스는 이어서 말한다. “나는 확신을 갖고 악령의 존재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함정투성이인 영역 안으로 무작정 뛰어드는 어리석음을 경고하지 않을 수 없다.
적대자와 그리스도의 싸움은 그리스도의 철저한 승리였다. 비록 인간에 대한 악의 장악이 아직 완전히 제거되지 않고 계속해서 경계심을 갖게 되더라도, 우리는 하느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있음을 안다. 신앙의 핵심에 놓인 바는 악마론이 아니라 성령의 권능을 지니신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하느님을 예배하고 찬양할 때 우리는 이미 우리를 종으로 삼으려는 우상숭배에서 풀려나고 있는 것이다.”
문종원 신부(서울대교구 성령쇄신 봉사회 지도전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