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안네 신학생이 라틴어와의 전쟁을 치르며 끙끙대던 어느 날이었다. 신학교 영성지도 신부와 교수 신부들이 비안네 신학생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자네는 신학교를 떠나는 것이 좋겠네.”
성령 안에서 충만한 삶을 살며 사제가 되기를 진심으로 갈망했던 비안네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신학교 신부님들은 비안네 신학생이 학업을 도저히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당시로선 라틴어를 모르면 철학과 신학의 정수를 접할 수 없었다. 따라서 비안네 신학생은 신학을 수학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인간적 욕심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이러한 상황에 처했을 때 반발할 수 있다.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그래서 반드시 사제가 되어야 한다.”“당신들이 뭔데, 인간적 판단으로 나와 하느님의 관계를 떼어놓으려 하느냐.”
하지만 비안네 신학생은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고 신학교를 떠난다. 순종한 것이다. 모든 것이 끝났다.
‘난 정말 사제가 될 수 없는 것일까….’
그토록 원하던 사제의 길은 이제 포기해야 했다. 그 고통과 회한은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영적 스승인 발레 신부의 품 안에서 폭발한다. 엉엉 울었다. 발레 신부는 목놓아 우는 비안네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말했다.
“우리 다시 시작하자. 넌 사제가 될 수 있어.”
눈물 가득한 눈으로 발레 신부를 올려보는 비안네의 눈이 반짝였다.
발레 신부는 이후 비안네의 개인 교수를 자처하고 직접 가르쳤다. 비안네의 눈높이에 맞춰, 라틴어가 아닌 영성 신학 중심으로 가르쳤다. 비안네도 성심껏 공부에 매달렸다.
대부분의 영화와 드라마는 이쯤에서 극적인 반전(비안네의 사제 서품)으로 이어지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3개월 후 비안네는 발레 신부와 함께 다시 대신학교를 찾아 졸업시험을 보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발레 신부도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발레 신부는 마지막 선택을 한다. 주교(리옹 교구장)를 찾아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비안네에게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놓치기 아까운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비안네를 사랑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는 꼭 사제가 되어야 할 사람입니다.”
주교는 발레 신부의 계속되는 청에 못이겨 감독관 2명을 비안네에게 보낸다. 사제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해 오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감독관 파견은 비안네에 대해 부정적인 주교의 심정을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발레 신부의 정성어린 탄원을 받아들일 마음이 있었다면 별도로 감독관을 보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교는 아마도 감독관이 “비안네는 역시 사제가 되기 힘들 것 같습니다”라는 보고서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발레 신부의 사제관으로 와서 비안네를 직접 만나고 시험을 치른 감독관들은 전혀 다른 보고서를 주교에게 제출했다.
“요한 마리아는 대부분의 시골본당 신부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그들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감독관이 비안네에게 내어준 시험지는 라틴어가 아니라 프랑스어로 된 것이었다. 신학교 시험이 라틴어로 치러지는 탓에 그동안 비안네는 한번도 자신의 실력을 드러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감독관의 보고서를 받고도 주교는 일단 판단을 유보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갈 즈음, 비안네에게 결정적 사건이 발생한다. 교구 사목 책임자가 바뀐 것이다. 쿨봉 주교였다. 비안네의 운명은 그의 손에 달려 있었다. 비안네는 교구에서도 이미 공부 못하는 신학생으로 소문난, 유명 인사였다. 발레 신부는 다시 한 번 주교를 찾아갔다. 기대는 물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쿨봉 주교가 의외의 질문을 한다.
“비안네는 신심이 깊습니까?”
발레 신부를 비롯한 교구청의 사제들은 “공부는 못하지만, 신심은 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쿨봉 주교가 한참동안 생각에 잠긴 후,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나는 그를 사제로 부르겠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그의 부족함을 채워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