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말 더듬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공적으로 쓰신다!”
선배 신부님이 나간 후, 물끄러미 십자가를 바라보며 잠 자기전에 그 말을 몇 번씩 되새겨 보았다고 합니다. 다음 날, 사제 서품식 날이 왔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도, 기도하면서도, 식사 중에도, 마지막 서품식 전례 연습 때에도 그 말을 되새겼다고 합니다.
드디어 시간은 다가왔고 사제품을 받기 위해 제단으로 행렬을 했고, 주교님의 인사 말씀과 함께 서품 미사가 거행되었습니다. 말씀의 전례가 끝난 후, 장상신부님이 자신의 이름을 호명하면서, 제단 앞에 섰는데, 마음이 편안해지더랍니다.
‘이상하지! 알 수 없는 마음의 고요함, 이 실체가 뭘까?’ 수사 신부님은 비록 몸은 떨었지만, 마음은 평온했다고 합니다. 성인 호칭 기도를 하기 위해, 땅에 자신의 온 몸을 엎드리게 되자, 선배 신부님의 말을 떠올리며, ‘주님, 나의 주님. 제가 수도 사제로 살아가면서, 당신의 말씀을 이웃에게 전할 때만이라도, 제발 말을 더듬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난 것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왜냐하면 사제 품을 받은 그 후로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이 순간까지, 미사 드릴 때, 강론할 때, 혹은 신자들에게 ‘영성 강의’를 할 때에는 단 한 번도 말을 더듬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도 가끔 사석에서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에는 말을 조금 더듬기도 한다고 하지만, 참 놀라운 증언이었습니다.
수사 신부님은 다음과 같은 말로 말을 끝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것은 몰라도 ‘열등감’으로 인해 생긴 지긋지긋한 ‘절망감’이 결국은 주님의 은총과 기도의 힘에 의해서, 나를 현재의 행복으로 이끌어 준 것 같습니다. 특히 나의 경우 말 더듬는 ‘열등감’은 현재의 나를 돌아보는 아주 좋은 영적신호등이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때로는 미사 중에나 강론, 강의 중에 말을 더듬으려는 마음의 신호가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 순간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 지금 내가 무언가를 급히 서두르고 있구나! 아, 뭔가를 내 마음대로 빨리 하려고 하는구나!’ 그리고 다시금 긴 호흡을 한 후 천천히, 정성껏 미사나 강론과 강의에 집중하게 되면, 말 더듬는 것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나의 처절한 절망을 행복으로 바꾸시는 주님께 날마다 미사를 통해서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어쩌면 말더듬이라는 ‘열등감’ 때문에 늘 영적 고요함을 찾고자 노력하게 되고, 속도 빠른 이 세상에서 ‘마음의 여유’를 배우게 되고, 영적 평온감을 유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나의 ‘열등감’은 참 좋은 은총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