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생들 사이에 ‘왕따’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특히 ‘자살’로까지 끝을 맺을 때 무척이나 마음이 아파오고는 합니다.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그 소중한 꽃들인데!
그런데 이러한 ‘왕따’ 현상과는 달리 ‘스따’, 즉 자신 스스로를 공동체나 조직 안에서 따돌림 하도록 만드는 현상도 주변에서 자주 접하게 됩니다. ‘공동체 안에서 분위기를 흐려놓으면서 자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공동체 안에서 자신을 내어 놓지도 않고, 함께 어울리려고 하지 않으면서 뒤돌아서서 공동체가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 ‘만날 때마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상대방의 약점을 잡은 후 그 상대방을 조종하려는 사람’ 등이 그러합니다.
이렇게 ‘스따’의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나치게 이기적이고 편협한 생각을 갖고 있으며, 스스로 공동체를 사랑한다 말하면서도 반대로 공동체와 거리를 벌려 나갑니다. 그러면서 ‘스따’들과 함께 사는 이들 스스로가 그들의 편파에 결국 공동체를 떠나가게도 합니다.
아무튼 이러한 ‘왕따’를 경험했던 사람이나 ‘스따’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겠으나, 본인은 그들의 행동 중 ‘믿음의 결여’ 차원에서 해답을 찾고자 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왕따’를 경험했던 학생들은 자신과 동료, 자신과 세상에 대한 ‘믿음’이 많은 부분 결여되어 있었기에 늘 주변 사람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러다보니 위축되고, 주눅이 들어 살아갑니다. 이에 그들의 약점을 찾아낸 다른 동료들이 그 모습을 부각시켜 그들을 학급 안에서 ‘왕따’로 만듭니다. 이는 ‘스따’인 사람도 그렇습니다. 이들 역시 인간에 대한 기본적 신뢰를 통한 ‘총체적 믿음이 결여’되어 있기에 내면에 있는 두려움과 불안에 직면하기 두려워 양보가 손해라 생각하여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관계 안에서 자기 방어에 급급하여 파벌을 형성하고, 외로움을 달래고자 주변 사람들을 소유하려 합니다. 결국 ‘믿음의 결여’가 관계를 집착, 편협하게 만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란 타인에게 받아 본 사람이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것이라 말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믿음’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믿음’을 줄 수 없다는 말일까요? ‘믿음’은 내가 타인에게 진심으로 준 만큼 좋은 관계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왕따’, ‘스따’ 할 것 없이, 타인에게 내가 먼저 괜찮은 믿음을 주는 노력을 해 보면 어떨까요? 왜냐하면 좋은 ‘믿음’이야 말로, 그 어떤 ‘따돌림’이건 간에 그것을 극복하게 하는 가장 좋은 마음의 영양분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