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곡」은 특별한 은총으로 이미 저승(지옥, 연옥, 천국) 순례를 마친 단테가 다시 이승으로 돌아와 그 순례 체험을 회상하며 인류의 회심과 구원을 위해 쓴 극시(劇詩)다. 그러므로 프레체로는 말한다. “단테의 체험은 시적 허구도 아니고, 역사적 사실도 아니다. 그것은 자전적 알레고리다. 그것은 성경의 구원 패러다임과 한 개인의 특수한 환경의 종합이다. 즉 적용된 예형론이다. 성경의 구원 패턴이 단테의 삶 안에서 드러난 것이다.” 특히 지옥 편 제1곡은 「신곡」 전체의 서곡으로 단테가 전하려는 「신곡」의 핵심 메시지가 모두 담겨있다.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어두운 숲속에서 헤매고 있었다.(지옥 1,1-3)
첫 행에서 단테는 ‘나의’ 인생길이라고 하지 않고 ‘우리’(nostra) 인생길이라고 말함으로써 「신곡」이 자전(自傳)적 알레고리임을 분명히 한다. 알레고리란 지시하는 것과는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는 시법을 말한다. 즉 「신곡」에서 한 인간의 경험은 모든 인간의 경험으로 확대된다. 그러므로 「신곡」을 읽는 독자는 또 하나의 단테가 된다. 단테 학자인 박상진 교수는 「단테 신곡 연구」에서 말한다. “그것은 나의 맥락에서 「신곡」을 다시 쓰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신곡」을 거듭나게 하는 것이고, 「신곡」을 구원하는 길이다. 자체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 「신곡」이 담고 있는 궁극의 진리다.”
“인생은 기껏해야 칠십 년”(시편 90,10)이라고 하는 성경 말씀에 따르면,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은 35세가 된다. 단테는 1265년생이므로 단테가 35세가 되던 해는 정확히 1300년이다. 단테가 「향연」(4,23,9)에서도 말하듯 35세는 인생의 정점(頂点)이며, 사실 그해 단테는 피렌체 정치권력의 최정상인 프리오레(priore)의 자리에 올랐다. 프리오레란 임기 2개월짜리 6명의 최고 행정위원을 가리킨다. 그런데 그 정상의 자리에서 그는 죄와 죽음의 어두운 숲속에서 헤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마치 병이 들어 죽게 된 유다 임금 히즈키야의 고백과도 같았다. “내 생의 한창때에 나는 떠나야 하는구나. 남은 햇수를 지내러 나는 저승의 문으로 불려 가는구나.”(이사 38,10) 하느님은 히즈키야의 기도와 눈물을 보시고 그를 병에서 회복시켜주신다. 「신곡」의 주제는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구원받은 히즈키야의 찬미가와도 그 맥락을 같이 한다.
단테는 자신이 어두운 숲속을 헤매고 있음을 깨달았다(mi ritrovai). 깨달았다는 잃어버렸던 자기를 다시 찾았다는 뜻으로,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알았다는 뜻이다. 이 동사는 저 유명한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그제야 제정신이 들었다.”(He came to himself)(루카 15,7) 이는 양심 안에서 빛이 동트기 시작한 순간을 말한다.
주인공 단테가 이성이 마비된 상태인 잠에 취해 들어갔던 그 어두운 숲이란 어떠한 곳인가? 단테는 「향연」(4,24,12)에서 말한다. “젊은이는 만약 연장자들이 좋은 길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이 삶에서 길을 잃기 쉬운 숲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 또한 「고백록」(10,35)에서 말한다. “이 세상은 위험과 함정이 엄청나게 가득 찬 숲이다.” 숲은 무지와 죄 때문에 어둡다. 무지와 죄는 어둠을 찾기 때문이다.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3,20)
성경은 올바른 길을 잃어버린 자들에 대해서도 말한다. “그들은 어둠의 길을 걸으려고, 바른 행로를 저버린 자들. 악행을 즐겨 하고, 사악한 것을 기뻐하는 자들. 그 길이 빗나가고, 그 행로가 엇나간 자들이다.”(잠언 2,13-14) “의인들의 길은 동틀 녘의 빛과 같아, 한낮이 될 때까지 점점 밝아지지만, 악인들의 길은 암흑과 같아, 어디에 걸려 비틀거리는지도 모른다.”(잠언 4,18-19) “그들은 바른길을 버리고 그릇된 길로 빠졌습니다.”(2베드 2,15) 올바른 길은 “나는 길이요”(요한 14,6)라고 하신 그리스도이시다. 다윗은 말한다. “주님은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나를 인도해주신다.”(시편 23,3) 단테는 숲이 끝나는 곳에서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태양의 빛살에 둘러싸인 구원의 언덕을 올려다본다. 태양은 “세상의 빛”(요한 8,12)이신 그리스도이시다.
「신곡」의 첫 3행은 우리가 그것이 재물이든 권력이든 명성이든 인생의 절정에 서 있을 때 자기가 지금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많은 소출을 거둔 부자는 좁은 곳간을 헐고 더 큰 곳간을 짓는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에게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2,20) 하고 말씀하신다. 또 임기를 마치면 늘 감옥으로 가는 대통령들도 이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생의 절정에서는 누구나 그저 내려오는 길밖에는 다른 길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