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단테의 신곡 제대로 배워봅시다] ③ 도덕적 알레고리로서의 세 짐승

김산춘 신부 (예수회·서강대 철학과 교수)
입력일 2021-01-26 수정일 2021-01-26 발행일 2021-01-31 제 3230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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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내적 약점을 노리는 외적 유혹들
주님께 가는 길 막는 죄의 성향들
육욕을 상징하는 암표범과 교만의 사자, 탐욕의 암늑대

윌리엄 블레이크 ‘단테 앞에 나타난 세 마리 짐승’.

저승 순례를 마치고 이승으로 다시 귀환한 단테에게 그 ‘거칠고 황량하고 험한 숲’을 다시 생각한다는 것은 ‘죽음보다도 더 쓴’(코헬 7,26) 두려움이었다. 그렇긴 하지만 그 체험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이 거기서부터 구원됐기 때문이다. 숲은 한편으로는 죄악과 타락을 상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에덴동산이라고 하는 신성한 숲을 예시한다.(연옥 28,23) 즉 숲은 올바른 길에서의 이탈(a-versio)의 장소이기도 하지만, 올바른 길로의 회심(con-versio)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단테는 자신 앞에 있는 언덕으로 향한다. 성경은 그 언덕을 ‘주님의 산’이라고 부른다. “누가 주님의 산에 오를 수 있으랴?”(시편 24,3) 태양이 그 산의 정상을 비추고 있다. 여기서 이미지와 어법은 근본적으로 성경적이다. “산들을 향하여 내 눈을 드네. 내 도움은 어디서 오리오?”(시편 121,1) 태양의 의미는 「향연」(3,12,6-7)에 제시되어있다. “이제는 영적이고 지성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태양 즉 하느님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온 세상에 어떤 감각의 대상도 태양만큼 하느님의 상징이 되는 것은 없다.”

어두운 숲은 마치 ‘살아나간 사람이 아무도 없는’(26행) 바다로 비유된다. 숲은 이집트 군대를 전멸시킨 홍해처럼 죄인들을 단죄하여 지옥의 두 번째 죽음(117행)으로 휩쓸어간다. 단테는 그릇된 사랑의 바다에서 빠져 죽을 뻔하였다. 그러나 인류를 대신하여 죽음을 감내하신 그리스도의 사랑 덕분에 올바른 사랑의 해변으로 구출되었다.(천국 26,55-63) 단테는 죄의 숲에서 벗어나느라 지쳐 있었다. 그는 힘을 내어 언덕 기슭을 오르기 시작한다. 그러나 언제나 다리에 힘이 들었다.(30행)

그리스도교에는 ‘영혼의 두 발’이라는 전통이 있다. 성 보나벤투라에 의하면, 처음 움직이는 오른발은 지성이다. 그리고 왼발은 의지이다. 아담의 죄로 인해 지성은 무지의 상처를 입었고, 의지는 욕정의 상처를 입었다. 그 결과 원죄 이후의 인간은 절름발이(homo claudus)가 되었다. 특히 인간은 왼발을 전다. 상처를 입은 의지가 절름거리는 것이다. 성 바오로는 말한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로마 7,19) 단테의 절름거리는 의지는 죄를 다 씻은 연옥 산 정상에 도달해서야 원래대로 회복될 것이다.

네 의지는 자유롭고 바르고 건강하여

거기에 따르지 않음은 옳지 않으리니

너에게 왕관과 주교관을 씌우노라.

(연옥 27,140-142)

지금 단테는 자신이 산의 정상을 향해 제대로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한다. 자기가 뒤편 어둠 속에 두고 온 죄의 성향들이 자기 앞을 가로막는 세 짐승의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첫째 짐승은 육욕(肉慾)을 상징하는 암표범(lonza)이다. 우리는 제5곡에서 불륜 때문에 비참하게 죽은 두 연인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다. 둘째 짐승은 교만을 상징하는 사자(leone)이다. 육신이 없는 천사들조차도 지을 수 있는 죄인 교만은 죄의 가장 깊은 뿌리이다. 교만의 정도는 정신 수준과 지위가 높을수록 더 심해진다. 천사들 가운데서도 최고위에 있던 루치페르(Lucifer)는 자신이 하느님이 되고 싶은 교만의 죄를 범한 후 사탄으로 전락한다. 셋째 짐승은 모든 악의 뿌리인 탐욕을 상징하는 암늑대(lupa)이다. 성 바오로는 말한다. “사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믿음에서 멀어져 방황하고 많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있습니다.”(1티모 6,10) 존재의 공복(空腹)은 아무리 돈을 부어도 채워지지 않는다. 본래 자기 것이 아닌 것으로 자기를 채우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말씀하신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루카 16,1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마태 6,33)

이처럼 도덕적 알레고리로서 세 짐승은 먼저 영적인 의미에서 보면, 원죄의 상처를 입고 이 세상에 들어온 인간의 내적 약점을 노리는 외적 유혹을 가리킨다. 이를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하늘이 원치 않는’ 악의 3대 범주(무절제, 폭력, 악의)라고 말한다. 지옥 편은 이 세 범주의 죄인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세 짐승의 이미지는 이미 성경에 나온다. “그러므로 숲속의 사자가 그들을 물어뜯고, 사막의 이리가 그들을 찢어 죽일 것입니다. 또 표범이 그들의 성읍마다 노리니, 거기에서 나오는 자는 누구나 갈갈이 찢길 것입니다.”(예레 5,6) 세 짐승의 이름은 모두 ‘엘’(el)로 시작한다. 엘은 본래 히브리어에서 하느님이다. 하느님께 반역한 마왕(魔王) 루치페르(Lucifer)도 엘로 시작한다.

다른 한편 정치적인 의미에서 보면, 어두운 숲은 정쟁으로 인해 혼란한 피렌체의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 안에서 표범은 타락한 피렌체, 사자는 신성로마제국에 대항하는 프랑스, 암늑대는 부와 권력을 추구하는 교황청에 비길 수 있다. 피렌체의 교황파 백당(Bianchi)에 속했던 단테는, 교황청과 결탁하여 프랑스군을 끌어들여 쿠데타에 성공한 흑당(Neri)에 의해 1302년 사형 판결을 받고 영구 추방을 당한다.

김산춘 신부 (예수회·서강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