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한다면 바로 그 자리가 지옥이 된다 지옥은 희망 보이지 않는 영원한 불 특정 장소 아니라 어디에나 존재 가능 절망은 곧 하느님과의 단절 의미
나를 거쳐 비통한 도시로 들어가고,
나를 거쳐 영원한 고통으로 들어가고, 나를 거쳐 멸망한 무리 사이로 들어가노라. 정의는 내 지존하신 창조주를 움직여, 천주의 권능과 최상의 지혜와 최초의 사랑이 나를 만드셨노라. 나보다 앞서 만들어진 것은 영원한 것들뿐, 나도 영원히 존속하리니, 여기 들어오는 너희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지옥 3,1-9) 단테는 지옥문에 쓰인 무서운 글귀를 보았다. 지옥문은 일인칭 화법으로 자기를 소개함과 동시에 지옥 전체를 소개하고 있다. 처음 3행은 3번이나 “나를 통해서”(PER ME)를 반복하는데 사태의 심각성을 강조한다. 지옥문은 지하가 아니라 지상에 있다. 그리고 언제나 활짝 열려있다. 그리스도 예수는 말한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마태7,13) 단테는 지옥문을 가리키며 부정관사(una porta)를 사용하고 있다. 즉 지옥문은 어느 특정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아니 그 누구라도 이웃에게 절망이 된다면 바로 지옥문이 될 수 있다. 키르케고르(1813~1855)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절망한다면 바로 그 자리가 지옥이 된다. 지옥이란 모든 희망을 버린 장소이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이것이 지옥의 정의다. 가브리엘 마르셀(1889~1973)은 절망은 존재의 근거인 하느님과의 단절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절망은 심리학적 문제가 아니라 존재론적 문제이다. “나는 하느님을 희망한다(J’éspère en Toi). 고로 나는 존재한다.” 이것이 그의 희망의 철학이었다.김산춘 신부 (예수회·서강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