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쉼터] ‘삶터’ 손수 짓는 정광섭·기철 父子

서상덕 기자
입력일 2017-10-10 수정일 2017-10-11 발행일 2017-10-15 제 3065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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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쌓아올리며 신앙도 깊어집니다”
10년 냉담 아들, 집짓기로 신앙 찾아
아버지는 시공법 배우려 14년 공부
함께 기도하고 일하며 ‘정’ 두터워져

집짓기 공사 전 기도를 바치고 있는 정광섭(오른쪽)씨와 아들 정기철씨. 부자의 일과는 어김없이 기도로 시작된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며 처음 만난 주민에게 물었다.

“정 프란치스코 형제님 댁이….” 대번에 답이 돌아왔다. “아…, 아들하고 같이 집 짓는 분…!”

이웃이 알려준 대로 찾아가자 어느 정도 얼개가 갖춰진 집이 눈에 들어온다. “이야~!” 순간 저도 모르게 탄성부터 나왔다.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매화산 자락에 자리한 ‘사누스힐’ 언저리에서는 망치소리가 은근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정광섭(프란치스코·61)·기철(요한 세례자·34)씨 부자와 만남은 감탄의 연속이었다.

■ 기도로 짓는 집

“아버지, 기도 안 해요?”

아들 기철씨가 먼저 채근한다.

집을 다 지을 때까지 머물고 있는 원주에서 새 집이 올라가고 있는 ‘사누스힐’까지는 30분 남짓한 거리. 현장에 도착한 정씨 부자의 일과는 어김없이 기도로 시작된다.

미사 때면 복사까지 서다 10년이나 냉담하던 기철씨를 다시 신앙 안으로 불러들인 것도 집짓기 덕이다.

처음 공사에 들어간 게 4월 10일이니 정씨 부자의 집짓기는 어느덧 6개월째로 접어들고 있다. 주 5일, 매일 8시간씩 이어지는 강행군. 싫증이 날법한데도 얼굴 찡그리는 일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부자의 집짓기는 삶에 대한 깨침이고 주님을 알아가는 기쁨의 여정이다.

“못 박는 일 하나하나도 제 힘만으로 되는 게 없다는 걸 느낍니다. 애초부터 이 일이 저희에게는 기도이고 묵상의 길임을 깨달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대못이 손을 관통하는 사고를 쳤음(?)에도 뼈를 다치지 않아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경험은 두고두고 묵상거리를 던져준다.

방수공사를 하고 있는 정광섭(아래)씨와 아들 정기철씨.

■ 닮아가는 꿈

정씨 부자의 여정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정돼 있었는지 모른다. 해군 장교였던 정씨의 부친도 선종하기 전까지 경남 창원에서 20년 동안 집을 짓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끝내 완성하지 못한 아버지의 꿈을 아들이, 그 아들의 아들이 이어가고 있는 셈이다.

“아버지가 짓고자 하셨던 집은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부친 뒤를 이어 제 손으로 집을 짓겠다는 꿈을 꾼 시간만 10년이 넘는다. 전자회사를 다니던 정씨는 2003년부터 주말마다 짬짬이 전기설비를 비롯해 건축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손으로 집을 짓기 위해 2014년 조기은퇴를 택했다. 그해부터 그는 타일시공, 실내목공 등을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집 지을 땅은 의외로 쉽게 구해졌다. 2015년 8월 가까운 지인과 우연한 기회에 ‘사누스힐’에 들렀다가 사흘 만에 땅을 계약했다. 이후 온 가족이 집짓기 ‘예행연습’에 돌입했다. 정씨는 2015년 연말부터 목조주택학교에서 두 달간 실습을 했다. 아내 오인옥(클라라·60)씨는 귀촌 준비를 위해 식초 담그는 법을 배웠다. 아버지가 손수 집을 짓겠다는 뜻을 털어놓자 아들 기철씨도 두말 않고 따라나섰다. 이미 자신의 신혼집을 새집같이 리모델링해준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두터웠기 때문.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2016년 초부터 실내목공을 공부하며 아버지의 꿈에 희망을 보탰다.

“집을 짓다 보면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기도생활에 젖어드는 모습에 스스로 놀랍니다.”

■ 나누고 싶은 체험

목조주택학교에서의 실습 체험을 바탕으로 2016년 3월 정식 목수로 나선 정씨가 올 1월까지 직접 공사에 참여해 지은 집만 다섯 채.

이젠 내 힘으로도 할 수 있겠다 싶어 나선 길이 자신들의 집짓기다. 두 부자의 힘만으로 건물 바닥 기초공사부터 기둥 세우기, 지붕 얹기, 벽체 세우기, 전기 배선, 상하수도 놓기 등을 하다 보니 집이 올라가는 속도는 더딜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는 사이 폭염, 장마 등과 싸우는 동안 부자의 정은 한결 도타워졌다.

“기회가 닿으면 한 번 도전해보라고 추천하고 싶어요.” 아버지와 집을 짓는 동안 자신의 미적 감각을 계발한 기철씨는 건축 공부를 더하기 위해 유학이라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됐다.

“목수의 아들이셨던 예수님도 이러셨을까요. 몸소 사람들에게 유용한 것들을 만드시며 하느님 나라라는 더 큰 집을 그리지 않으셨을까 싶습니다.”

하루하루 생각도 못했던 체험들이 쌓이는 만큼 기도와 묵상의 깊이도 더해가고 있다.

◆ ‘사누스힐’은…

치악산 허파인 강원 횡성 매화산 자락

초대교회 공동체의 꿈 실현하는 마을

치악산의 허파에 해당하는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매화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사누스’(Sanus)는 ‘건강한’, ‘치유되는’이란 뜻을 지닌 라틴어. 지친 몸과 마음을 새롭게 치유해 건강한 모습으로 하느님을 뵈러 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본당 청년연합회 초대회장을 지낸 (주)사누스 박영군(루피노·65·원주교구 안흥본당) 대표가 주님을 찬미하며 복음을 살아가던 초대교회 공동체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일궈나가고 있는 마을이다. 지난 2004년 주천강변 일대 10만㎡(3만 평) 대지에 처음 둥지를 튼 ‘사누스빌’이 시작이었다. 복잡한 도회지에서의 삶을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사누스빌은 방송과 일간지 등 각종 언론매체에서 은퇴를 앞둔 이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전원주택단지로 소개됐다. 함께 살고 싶어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늘면서 2차 뜨래꽃마을, 3차 사누스밸리, 4차 사누스힐까지 마을이 확장되고 있다.

정광섭씨는 “전원생활이 실패하는 주된 원인이 이웃과의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 때문인데, 이곳에서는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말한다. 따로 신자만 고른 것도 아닌데, 입주민 90%가 신자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매일 아침 6시부터 함께하는 산책으로 열린다. 마을 둘레 숲속 길 3㎞ 남짓한 공간에 조성된 성모동산과 십자가의 길을 돌며 서로의 안부를 챙기고 세상사도 나눈다.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여는 반모임, 마음 맞는 이들끼리 수시로 갖는 기도모임 등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계절별로 정월대보름 축제에, 함께 산나물을 캐 나누는 산나물 축제, 한여름 밤의 콘서트 등은 인근 마을주민들에게도 인기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셨기에 이뤄진 일이라 믿습니다. 주님 뜻만 좇는 공동체로 발전해 나갔으면 합니다.”

박 대표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소비만 이뤄지는 공간이 아니라 생산도 함께 이뤄져야 ‘지속가능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래서 구상한 것이 협동조합형 마을기업. 주민들이 신앙에 더해 생활도 함께 나눠갈 수 있는 고리인 셈이다. 쉽게 할 수 있는 된장 등 장류와 효소, 절인 배추를 만드는 일과 조경, 전원주택 관리 등 개개인의 능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피정센터도 마련해 정신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는 장도 구상 중이다. 여느 피정집과 다른 것은 철저히 마을사람들의 봉사로 꾸려간다는 것. 마을 주민뿐 아니라 지친 이 누구에게나 열어놓을 계획이다. “우리 스스로 지상에서 천국을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한 형제가 될 수 있는지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문의 033-344-8877 (주)사누스, www.sanus.co.kr

서상덕 기자 sa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