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본당에서 보좌 신부로 살다가, 유학 발령을 받아 외국에서 생활하던 젊은 교구 신부님이 있습니다. 언젠가 그 신부님이 휴가를 나왔다가 나를 만나고 간 적이 있습니다. 유학 생활이 힘들어서 그런지, 살이 많이 빠졌고 얼굴도 조금은 야위었습니다. 그날, 그 신부님과 대화중에 나는 물었습니다.
“유학 생활이 많이 힘든가봐, 얼굴이랑 몸이 반쪽이 되었네!” “헤헤. 외국 생활이 다 그렇죠. 그런데 신부님은 잘 계셔요?” “응, 나는 뭐 그럭저럭 잘 지내.” “신부님도 예비신자 교리반에 들어가세요?” “나, 나는 예비신자 교리반에 들어가고 싶어도 자리가 없어. 하하하. 본당 예비신자 교리는 보좌 신부님 반과 수녀님 반, 이렇게 두 개만 있거든.” “아, 그렇구나. 교리 배우시는 분들 연세는 어떻게 되세요?” “그것까지는 잘 몰라. 하지만 다들 열심히 교리반 다니신다는 말은 들었어! 그런데 왜? 외국에서 교리 공부 가르쳐?” “그게 아니라, 유학 생활하면서 예전에 보좌 신부 때 부끄러웠던 모습이 생각나서요.” “그게 뭔데?” “‘세상살이 신앙살이’에 실으시게요?” “야, 안 실어. 내가 뭐 아무 이야기나 싣는 줄 아니. 약속, 절대 안 실어.” “그럼 말씀드릴게요. 사실 보좌 때 제가 본당 교리반을 맡은 적이 있는데, 그분들의 평균 나이가 40대 후반에서 50대였어요. 그런데 유난히 연세가 많은 분이 내가 하는 교리반에 오셨어요. 그분은 다른 날은 시간이 안 되신다고 굳이 내가 하는 교리반에 오셨죠. 암튼 교리 공부는 시작되었고, 한 달 후면 영세식을 하게 될 때였어요. 당시 주임 신부님께 찰고 방식에 대해 물었어요. 그러자 주임 신부님은 교리 내용이야,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익숙해질 테니, 간단한 질문 몇 개랑 기도문을 외우는 정도의 성의만 있으면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나는 교리반에 들어가서, 교리 공부하는 학생분들에게 기도문 외우는 것을 특별히 강조했어요. 그 후 예비자분들에게 기도문을 외우고 계신지를 확인하고, 또 확인을 했어요. 그래서 찰고하는 날짜가 다가왔는데, 그 할아버지는 기도문을 하나도, 정말 하나도 외우지 못하신 거예요. 그래서 얼마나 속이 탔는지. 암튼 할아버지가 기도문 하나라도 외우게 하려고 집중적으로 기도문 외우는 시간도 가져보았는데, 결국은 하나도 못 외우신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찰고는 통과되셨고, 영세는 받았죠. 그 후, 나는 유학을 왔고, 언어 공부를 하던 때였어요. 당시 매일 미사를 드리면서 외국어 미사 경문을 눈으로 보고 읽지만, 기도문 정도야 당연히 외워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사도신경이나 주님의 기도, 성모송을 외우려고 했는데, 어찌나 힘들던지. 이제 가까스로 주님의 기도 정도만 외우고 있고요, 다른 건 아직도 못 외우겠더라고요. 그래서 기도문 하나를 제대로 외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알게 되었어요. 그러면서 그 할아버지 모습이 생각이 나고! 그 당시 내 모습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그 신부의 따뜻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우리에게는 무척 익숙한 것이 새로 시작하는 분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모태 신앙이고, 어릴 때부터 성당에 다녔던 사람들에게 기도문 외우는 건 아주 쉬운 일이지만, 나이 들어 신앙을 가진 분들에게는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저 또한 간접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신앙생활, 때로는 시간이 필요하고, 기다림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한 사람의 신앙생활, 하느님께서도 그를 잘 기다리시는데, 주변 사람들이 자꾸만 조바심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