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그날 일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날은 주일 날, 밤 9시 반 즈음이었습니다. 핸드폰으로 전화가 걸려 와서, ‘이 시간에 누구지?’ 하며 이름을 확인했는데, 평소에 무척이나 예의 바른 형제님의 전화였습니다. ‘어, 이 분이 이 시간에 전화를 할 분이 아닌데…, 무슨 일 있나!’ 순간 걱정이 앞서면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여보세요?” 그러자 혀가 약간 꼬부라진 목소리로 형제님이 대뜸 말하기를, “형님, 잘 계셨어요?” 나는 속으로, ‘아이고, 이 양반이 약주 한 잔 하셨구나!’ 하는 생각에 웃으며 말했습니다. “우리 야고보 형제, 어쩐 일이야! 이 시간에 전화도 다 하고!” “이 동생이 우리 형님 보고 싶어서 전화를 좀 했습니다. 지금 뭐하세요?” “나, 지금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있지.” “아이, 그러면, 좀 나와요. 우리 형님 얼굴도 보고, 누구 좀 소개 좀 시켜주게.” “이 시간에 나오라고? 그리고 누구를 소개 시켜 준다고?” “나오시면 됩니다. 삼선교에 있는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지금 꼭 나오셔야 합니다. 꼭, 꼭 나오세요.” 우선 고개를 몇 번이고 갸우뚱했습니다. 이럴 분이 아닌데! 워낙 좋은 분이고, 나보다 나이가 어려, 가끔은 형, 동생처럼 말을 편하게는 했지만, 실제로 그 형제님이 나에게 ‘형님’이란 호칭을 분명하게 쓰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나갈까! 말까… 나갈까! 말까…’ 그렇게 몇 번을 고민하다가 조용히, 정말 조용히 수도원 밖을 나와서 차를 타고 그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찾아가서 보니, 야고보 형제님은 다른 형제님 한 명이랑 소주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내가 온 것을 보고, 야고보 형제님이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우리 형님, 오셨네. 우하하하. 거 봐, 우리 형님 오신다고 했잖아.” 야고보 형제님은 함께 있는 다른 형제님에게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형제님은 불그스레한 얼굴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정말 내 친구가 형님이라고 부르는 신부님이 있기는 있네요. 좀 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친구가 신부님 이야기를 하면서, 형님 동생으로 지낸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건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말했더니, 그 순간 바로 전화를 했습니다. 이렇게 불쑥, 아니 억지로 불러내서 죄송합니다. 그런데 진짜로 내 친한 친구, 내 소중한 이 친구랑 형님 동생하며 지내는 신부님이 계시는군요. 정말 신기하다….” 그러면서 자리에 앉더니, 소주 한 잔을 나에게 건넸습니다. 나는 대충의 분위기는 파악하겠는데, 아직까지 내가 이 자리를 잘 왔는지, 안 왔는지 구분이 안 되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야고보 형제님이 말하기를, “형님, 아니 신부님, 에이, 형님, 우리 두 사람은 닮은 데가 있어요. 하하하.” “두 분이 동창인가요?” “예, 동창이기도 하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사연을 똑같이 품고 있는 친구예요. 그래서 그 후로 우리 둘은 10년이 훨씬 지난 오늘까지 이렇게 친하게 지내고 있는 거예요.” 그러자 다른 친구분이 머리를 긁더니, “이제 기억도 안 나고, 생각도 잘 안 나요. 하하하. 그러면 안 되는데….” 나는 그 순간 밀려오는 슬픔의 상황이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야고보 형제님이 말하기를, “우리 둘 다 초등학교 다니던 아들을… 하느님 품에… 그 품에… 보내드렸거든요.” (다음 호에 계속)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