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부부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부부는 지난주에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다녀왔답니다. 그래서 좋은 순례 일정을 보냈는지 물었더니 형제님은,
“예전에도 기회가 있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순례를 가지 못했죠. 그래서 이번에는 무조건 길을 따라나섰어요. 다녀와서 좋은 점은 평소 성경을 접할 때면, 이스라엘과 성경에 나오는 지명들은 그저 멀고도 먼 그런 곳이라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아주 친근함이 드네요” 나는 형제님의 말을 듣다가 대뜸, “혹시 성례 순례 때 저를 위해 기도는 하셨어요? 그리고 선물은 사가지고 오셨나요?” 그러자 자매님은, “그럼요, 착한 목자 되시라고 기도는 했는데, 선물이 좀…” 그러자 형제님이 말하기를, “우리 부부가 성지 순례를 떠나면서, 소중한 분들에게 기가 막힌 것을 선물하기로 생각했어요. 그건 일반적인 성물 보다, 우리의 기도가 함께 들어가 있는 성물을 선물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하는 동안 미사를 드렸거나, 혹은 성지를 방문하면 미리 준비해 놓은 성수통에 그곳 성수를 담아 선물할 계획이었어요. 그래서 나자렛의 성 가정 성당이면 ‘성가정’, 카나의 혼인잔치 성당이면 ‘카나’, 진복팔단 성당이면 ‘진복팔단’, 예리코의 착한 목자 성당이면 ‘예리코’, 성모님의 엘리사벳 방문 성당이면 ‘아인 카렘’ 등을 적어 두었구요.” 나는 그 부부의 그 생각이 너무나 좋아서 물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귀한 선물을 할 생각을 어떻게 하셨어요? 대단하시다. 그래요, 저에게는 어느 성당에서 받아 온 성수를 가지고 오셨어요?” 그러자 자매님이 말하기를, “마지막 일정으로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 돌도 만져보고, 예수님 주검을 두었던 돌무덤에 들어가 친구도 하고, 아무튼 돌아오는 날까지 예루살렘 순례에 대한 감동이 컸어요. 그래서 짐을 챙겨 텔아비브 공항으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마음속 여운만 가득 남았어요. 그러다 한국에 돌아가서, 성수를 전달해 줄 분 얼굴을 떠올리던 순간, 숙소 냉장고에 안에, 그동안 모아 둔 성수를 그만 다 놓고 왔던 거예요. 돌아갈 수도 없이….” 순간… 세 사람이 적막감 속에서 그냥 말 없는 미소만 지었습니다. 순례 동안 잊지 않고 정성스레 준비한 성수를 두고 마지막 날, 냉장고에 두고 온 것이 안타까운 사연 같은데, 그런데 그리 애써 준비한 성수를 숙소 냉장고 안에 깜빡하고 두고 왔다는 것이! 웃을지, 어떨지 몰라서… 그냥 우리 세 사람은 서로의 얼굴만 보며 미소만 지었습니다. 그런 다음 세 사람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의 본성’이 아래로 흐르기에 겸손을 상징한다는 것. 성수 또한 거룩한 순례지에서 정성껏 준비하려 했다는 것. 그러므로 비록 성지의 성수를 가져오지 못했지만, 성수의 본성에 대해 묵상하며, 우리 먼저 자신을 정화하는 삶을 살고, 부부는 가족 안에서 사랑의 삶으로 서로를 정화하고, 사제인 나는 언제나 신자들 안에서 정화의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가기로 다짐하는 것이 성수를 빠트리고 온 하느님의 섭리라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헤어진 후, 나는 성수를 주제로, 그 부부와 영적인 대화를 묵상하며 ‘나는 어떻게 하면 정화의 삶을 잘 살아갈까’를 궁리하고 싶었는데! 그만 엉뚱한 생각으로 빠져 버렸습니다. ‘나도 성지 순례를 가면 성수 통을 가지고 가서, 그곳 성지의 성수를 담아서 필요한 사람에게 그것을 선물로 줘야지’ 하는 생각만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하루였습니다. 이스라엘 성수는 받지 못했지만, ‘성수 선물’이라는 기발한 생각의 선물은 받았습니다.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