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6일 오후 1시,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부설 자선의료기관인 영등포 요셉의원(원장 조해붕 신부) 4층 도서실에 스무 명가량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주로 노숙인, 쪽방촌 거주자, 기초생활수급자인 이들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매주 목요일 오후 1~3시 열리는 음악치료 시간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벨 플레이트, 하모니카 등의 악기 연주와 노래를 통해 아픈 마음을 달랜다.
수업이 시작되자 멋쟁이 교수님이 등장한다. 우리나라 음악치료계의 ‘대모’ 김군자(크리스티나) 전 이화여대 교수다. 베레모에 긴 웨이브 머리, 화려한 코트 차림에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나 아직 안 죽었네요.” 농담으로 새해 첫 수업의 인사를 건넨다. 놀랍게도 그는 올해 우리 나이로 80세다.
음대 교수로는 드물게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김 교수는 1981년부터 이화여대 언어청각임상센터에서 자폐아를 비롯한 장애아동 음악치료를 시작해 동 대학원 음악치료학과 설립에 일조하는 등 ‘음악치료’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절부터 음악치료 전문가로 활약했다.
장애아동, 암 환자, 정신질환자, 이혼 위기 부부 등 다양한 사람들을 치료해 온 김 교수지만 노숙인들과 만나게 될 것이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 한다.
요셉의원과의 인연은 요셉의원 부속 시설인 ‘목동의 집’에서 알코올 의존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1년간 음악치료를 한 것에서 비롯됐다. 그 후에도 가끔 요셉의원에 인사차 들르곤 했는데, 2010년 어느 날 의원 관계자가 음악치료를 제안했다.
“손사래를 치며 ‘아휴, 못해요’라는 한마디로 거절하고 병원 밖으로 나왔죠. 그때가 여름이었는데 병원 주위에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어요. 어디선가 ‘쿵’ 소리가 크게 나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보니 줄을 서 있던 한 노인이 쓰러진 것이었어요. 그 순간, 줄 가운데에 예수님이 끼여 서 계신 모상이 떠오르더라고요. 곧바로 병원으로 다시 들어갔죠.”
“악기 하나 사 주세요”라는 말로 시작한 음악치료가 어느덧 10년을 맞았다.
초기에는 그야말로 좌충우돌이었다. 술을 먹고 와 ‘오동추야 달이 밝아~’ 같은 노래를 부르는 이도 있었고, 개인 위생 상태도 열악해 교실 내에 악취가 진동했다.
김 교수는 때 낀 손을 잡아 주고 냄새나는 몸을 안아 줬다. 라포르(rapport, 상호신뢰관계를 나타내는 심리학 용어)를 형성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마음이 열리고 변화가 시작됐다.
깨끗이 씻고 오는 것은 기본이고, 평생 아무에게도 표현 못한 자신의 속마음을 편지로 전달하는 이도 있었다. 만성 두통을 고친 이도, 배운 것을 그대로 적어서 장애인 시설에 가서 음악치료 봉사를 하는 참가자도 있다고.
“덮으면 병이 됩니다. 자기 표현을 해야 건강한 것이죠. 치료사는 덮어둔 것을 벗겨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요셉의원 음악치료 프로그램은 ‘그룹 안에서의 개별 치료’를 목표로 합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면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머리에 입력돼 공명이 일어납니다. 한 사람이 울면 다같이 울면서 치유가 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