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사회교리」 53항 사랑에 바탕을 둔 정의는 함께 하느님을 닮도록 이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빚어진 인간 세상의 관리자로서 부르심 받아 사랑·자비와 함께 발휘되는 정의 모두 사람답게 사는 사회 만들어
광해군: 분명히 대동법을 실시할 방안을 마련하라 했을 텐데?
신하들: 전하, 하루아침에 결수대로 세금을 부과한다면 지주들의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옵니다. 그들 또한 백성이온데 어찌 차별을 두겠나이까? 광해군: 땅 열 마지기 가진 이에게 쌀 열 섬을 받고 땅 한 마지기 가진 이에게 쌀 한 섬을 받겠다는 게 그게 차별이오? 백성들은 스스로 노비가 되고 내시가 되는 판에, 기껏 지주들 쌀 한 섬 때문에 차별 운운한단 말이오?(영화 ‘광해’ 중) ■ 소득양극화, 극빈층의 증가 2012년 영화 ‘광해’의 한 장면입니다. 가상 역사물이지만 영화는 시원한 청량감을 줍니다. 주인공인 가짜 광해군이 백성을 사랑하는 정의로운 군주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특산물이 아닌 쌀로 납부하는 대동법은 그 취지는 좋았으나 엄청난 수송부담으로 인한 인력과 비용, 교통시설과 창고 문제 등 현실적 어려움이 많았고 실제로 시행되지 못했습니다. 최근 국내외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고, 전세계적으로 소득양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극빈층이 증가했습니다. 이에 따라 기본소득 제도, 이익공유화와 같은 정책들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쪽에서는 인권, 사회통합, 약자 보호, 건강한 사회를 위해 그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개인과 기업의 부담, 기본권과 사유재산이 침해될 우려, 이로 인한 조세저항을 근거로 반대합니다. 올바른 분배 문제는 항상 사회복지와 정의론의 쟁점입니다. 그렇다면 분배와 관련해서 무엇이 정의일까요? 이와 관련한 가톨릭교회 가르침은 사회적 책임과 함께 선포됩니다. ■ 인간의 올바른 책임 가톨릭교회는 인간을 ‘하느님의 모상’이자 ‘책임을 가진 존재’라 합니다. 성경에도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도록 불림 받은 인간은 피조물을 돌볼 창조의 관리자(창세 1,28) 또는 성실한 청지기(루카 16,1-15)로 묘사됩니다. 인간의 소명은 이웃과 사회, 피조물과 자연, 세상에 대한 책임에서 비롯됩니다. 그 책임은 독단적이고 파괴적인 지배나 정복이 아니라 봉사와 존중입니다. 이는 더 구체적으로 사회에 대한 관심과 책임, 세상의 관리자로서의 책임, 자녀에 대한 부모의 책임, 부자·부유한 나라의 책임, 하느님 백성의 책임이며 그 본질은 사랑과 자비에 바탕을 둔 정의의 실천입니다. 또한 나눔과 사랑,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 재화의 선용, 부조리한 것의 개선 등을 통해 이뤄집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에서 “하느님 자비에 힘입어 인간 상호간 자비로운 인간관계를 확립하는 것이 인간 완성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사랑, 자비라는 올바른 책임과 함께 발휘되는 정의는 다른 덕들(지혜·용기·절제)과 함께 하느님을 닮게 하고(성 그레고리오), 서로 돕는 사회를 만들어 갑니다. ■ 삶의 방식으로서 사랑 가톨릭교회는 재화의 사용에 대해 매우 높은 윤리를 제시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과부의 렙톤 두 닢을 칭찬하셨고(루카 21,3-4), 재산만을 믿었던 부자는 질타하셨으며, 이웃을 내 몸처럼 돌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사도행전에서는 초대교회 때 재산을 공동소유하고 함께 기도했던 이상적 모습, 사랑의 공동체, 신앙의 행복을 묘사합니다.(사도 2,44) 하지만 이것은 강요가 아니라 초대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을 말씀하시고 우리가 그 사랑을 선택하는 이유는 그것이 참으로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진정 생기 있고 기쁘게 사는 비결이자, 각 개인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협력하게 하며, 더 큰 선익을 지향하며 우리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가톨릭교회는 정의에 대해 “윤리적인 덕으로서 마땅히 하느님께 드릴 것을 드리고 이웃에게 주어야 할 것을 주려는 지속적이고 확고한 의지”라고 가르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807항, 「간추린 사회교리」 201항) 정의를 위한 올바른 의지가 우리와 사회를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요구에 맞게 사회 관계들을 변화시키는 일은 구체적인 경계 안에서 단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맡겨진 과제로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복음의 영감을 받아 성찰과 실천을 통하여 발전시키고 실행하여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동시에 온 누리에 충만하신 주님의 성령께서는 때때로 인류가 창조의 책임을 수행하도록 새롭고 적절한 방식으로 영감을 주신다.”(「간추린 사회교리」 53항)이주형 신부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