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찾아가는 이주사목 펼치는 대전교구 ‘천안 모이세’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21-09-14 수정일 2021-09-14 발행일 2021-09-19 제 3262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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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터전에서 모국어로 소통하는 ‘맞춤형 사목’이 열쇠
필리핀·베트남·동티모르 등 국가별 모국어로 전례 거행
각 민족의 전통과 문화 고려 신자 구분 없이 생활 지원
소통과 주체적인 활동 위한 찾아가는 사목 반드시 필요
이주민에 대한 관심 비롯한 지역 본당 협력과 지원 필수

지난 5월 30일 삼위일체 대축일 미사 후, 필리핀 천안 공동체 식구들이 필리핀 사목자인 빅토르 플로리다 신부(성모상 왼쪽)와 주드 제노비아 신부(성모상 오른쪽)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천안 모이세 제공

국내 체류 이주민들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목 활동 역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을 맞아,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 ‘찾아가는 이주사목’을 펼치고 있는 대전교구 천안 모이세를 통해 앞으로 교회의 이주사목이 나아갈 방향을 알아본다.

충남 천안시 동남구 오룡동 천안 모이세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에밀리아노 파하르도(47)씨는 매주 홍성, 서산, 당진, 신합덕, 그리고 천안 등 5개 지역을 두루 다니며 필리핀 이주민들의 미사에 함께한다.

필리핀 국적의 에밀리아노씨는 2003년 기술 연수생으로 한국을 다녀간 뒤 필리핀 아테나오대학에서 이주신학을 공부하고, 2008년 선교사로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대전교구에서 이주민들을 돌보고 지원하는 일을 해왔다.

“전에는 주로 대전이나 천안 등 도시 지역에서 영어로 미사를 봉헌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다가 2017년부터 각 지역을 찾아가 타갈로그어로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각 지역의 필리핀 공동체는 대체로 50명 내외의 신자들로 구성돼 있고, 골롬반 외방 선교회와 말씀의 선교 수도회 소속 필리핀인 사제 2명이 5곳의 공동체 미사를 나눠 맡고 있다. 코로나19 감염 위험 때문에 실제 매주 미사 참례자 수는 현재 20명 내외다. 미사를 전후해선 고해성사와 노동, 의료 등 이런저런 생활 상담이 이뤄진다.

“지난 주 홍성성당에서 봉헌한 미사 중 한 필리핀 여성이 내내 울고 계셨어요. 공동체를 이끄는 회장님을 통해서 상담을 했고, 아프고 힘든 사연을 듣고 위로를 해드렸어요. 사실 한국에 있는 이주민들은 속을 내놓고 이야기를 나누기 힘들 때가 많거든요.”

■ ‘찾아가는 사목’

한국인 사목자가 한국어로, 혹은 영어로만 이주민 사목을 할 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뤄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천안 모이세는 그런 점을 고려해 각 지역의 거점을 찾아갈 뿐만 아니라 해당 공동체의 모국어로 전례를 거행하고 삶의 소소한 부분까지 소통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천안 모이세 전담 박찬인 신부가 부임한 것이 2017년 말이다. 박 신부는 부임 후 찾아가는 사목, 출신 국가 언어로 하는 소통이 필요하다는데 주목했다. 교구의 이주민에 대한 관심과 사랑 어린 지원을 바탕으로 여러 수도회와 협약을 맺고, 필리핀과 베트남, 동티모르 사제와 수도자들의 협력을 이끌어내고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이주민들은 낯선 이국땅에서 신앙과 생활의 크고 작은 어려움들을 겪게 마련이다. 현재 전 세계적인 코로나19의 영향은 이주사목에도 예외가 아니다. 공동체 전례와 모임 참여에도 어려움이 있고, 다양한 친교와 나눔 행사들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그만큼 이주민들의 신앙과 일상생활도 크게 위축돼 있다.

■ 공동체 활성화

베트남 출신의 아숨타 수녀(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는 “신자들을 주일 미사 때에만 잠시 만날 수 있어서 그분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도움을 주기에 어려움이 있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미얀마 출신으로 베트남 공동체 지원을 담당하는 응웬 티 옌 니 수녀 역시 “코로나19 때문에 신자들을 만나기가 어려워 주로 전화로 많이 연락을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자기 삶터에서, 자기 나라 언어로 이뤄지는 사목활동 덕분에 공동체가 꾸준하게 활성화되고, 크고 작은 신앙과 삶의 고민들을 좀 더 활발하게 나눌 수 있게 됐다.

박찬인 신부는 “이주사목에 있어서 새로운 접근과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사목자와 신자들의 원활한 소통과 공동체의 주체적인 활동을 위한 ‘찾아가는 사목’이 절대적으로 요청된다”고 강조했다.

■ 조직 개편

이를 위해 천안 모이세는 우선 모든 활동을 교회사업, 사회사업, 그리고 운영지원사업 등 3가지 분야로 재편했다. 신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회사업은 주일 미사를 포함한 전례와 성사생활, 나눔과 친교를 중심으로 하는 공동체 활동, 그리고 영적 성숙을 기하기 위한 다양한 신심행사들을 포함한다.

사회사업은 신자들뿐만 아니라 비신자들을 모두 포용한다. 다문화가정 및 아동 지원 활동과 노동, 의료, 교육, 통번역 서비스, 긴급지원 등 지역 사회 이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문화와 복지, 생활 지원 활동이다.

교회사업과 사회사업에서는 각 민족 공동체의 전통과 문화적 특성들을 십분 고려한 활동들이 이뤄진다.

그리고 본부와 각 공동체의 제반 사업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홍보, 후원, 교육 등 운영지원사업을 별도로 운영한다.

이러한 이주사목 활동을 전개하는데 있어서는 지역 본당의 관심과 지원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천안·서산·당진·홍성 등 총 9개 본당이 협력 본당으로 이주사목을 지원한다.

공동체는 필리핀과 베트남 공동체 각 5개와 동티모르 1개 공동체가 있고 그 외에 케냐와 미국, 몽골 출신의 이주민들이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이들 공동체들은 지역별로 자기 나라 언어, 즉 타갈로그어와 베트남어, 동티모르어와 영어로 평일과 주일 미사를 봉헌한다.

천안 모이세에서 활동하는 협력사제와 수도자는 대부분 센터에서 거주하면서 긴밀한 협력 체제를 형성한다. 현재 한국인 전담 사제 2명, 필리핀과 베트남 사제 각 2명, 동티모르 사제 1명 등 7명의 이주사목 담당 사제가 활동한다. 수도자는 한국과 베트남 수녀 각 2명과 미얀마 수녀 1명 등 5명이 있다.

5월 2일 필리핀 공동체 미사에서 천안 모이세 보좌 이성진 신부가 생일을 맞은 신자들을 축복하고 있다. 천안 모이세 제공

3월 6일 베트남 공동체에서 유아세례와 혼인미사를 하고 있는 모습. 천안 모이세 제공

■ 다문화 사회, 인식 개선 필요

천안 ‘모이세’라는 이름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을 이끌었던 모세, 우리 주위의 수많은 이주민들이 곧 하느님의 구원을 향해 함께 나아가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고 그들과 함께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또한 인종이나 문화, 국적의 구별 없이 모두가 더불어 ‘모이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천안 모이세가 시작된 것은 지난 2003년, 그해 8월에 천안 지역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상담 활동에서 비롯됐다. 이에 앞서 대전교구 이주노동자 사목국이 1월에 신설됐고, 3월에 대전교구 외국인 사목센터(대전 모이세)가 문을 연데 이어, 이듬해인 2004년 4월 27일에 천안 모이세가 개소했다. 현재의 위치에 이주한 것은 2012년 4월 26일이다.

한국에 체류하는 이주민 수는 2007년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긴 이래 매년 증가세를 보여 2019년 250만 명을 넘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잠정적 감소 현상을 나타내고 있지만, 이미 한국 사회는 다문화 사회에 진입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천안 모이세는 급격한 국내 이주민 증가에 따라 가장 시급한 문제 중 하나로, 이들을 우리의 형제자매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전환을 꼽고 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천안 모이세는 지역 내의 모든 신자 및 비신자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신앙은 물론 모든 일상 삶의 조건들을 지원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박영호 기자 young@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