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세미나에 참가한 후 나는 될 수 있으면 성당에 자주 가려고 애썼다. 아이들도 주일학교에 등록하고 집안일도 안정적 상태가 됐다. 가족들은 자주 함께 미사에 참례했다.
당시 성주간 금요일로 기억된다. 온 식구가 걸어서 성당에 가는 도중 작은 녀석 요한이 반대편에서 걸어가는 친구를 보더니 좌우 살피지도 않고 친구 이름을 부르면서 찻길을 건너는 것이었다. 잡을 새도 없이 달려오는 택시 사이드미러에 얼굴을 맞고 튕겨 나가버린 것이다. 조그마한 요한이 붕 떴다가 날아가서 떨어지는 것을 보니 난 제정신이 아니었다. 성당으로 향하던 신자들 도움으로 응급실에 실려 간 요한은 “큰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할 만큼 심하게 부딪힌 상황이었다.
정신이 혼미했고, 바로 큰 병원으로 갔다. 뇌 정밀검사 후 결과를 알려주는데, 의사 선생님은 “이 정도 상처에 아무 이상 없는 것은 기적입니다”라고 하셨다.
나는 그냥 주저앉아서 하염없이 울었다. 그냥 눈물이 났다. 요한은 며칠 입원 치료 후 퇴원했다. 입원 중 본당 신부님, 수녀님, 모든 신자가 요한이를 위해 미사 봉헌은 물론 많은 기도를 바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신부님은 성 골롬반 외방 선교회 소속 은 다니엘 신부님이셨다. 아일랜드 출신 신부님이셨다. 지금도 보고 싶은 신부님이시다.
이후 성당에 가만히 앉아 벽에 걸린 예수님을 바라보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한참을 앉아 있으니 졸음이 왔다. 꾸벅꾸벅 졸면서 기도 반 졸음 반 하던 중, “아…, 이렇게 고비마다 예수님이 우리 아이들을 지켜주셨구나.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세 번씩이나. 주님, 감사합니다”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문득 성령세미나에서 체험한 내용이 생각났다. 그리고 다시 결심했다. “그래. 내가 청한 은총이 지혜이지. 지혜롭게 잘 헤쳐 나가자. 주님의 집에서.” 또 간절히 기도드렸다. ‘본당에서 열심히 봉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생각해보면 주님은 평생 그 기도를 들어주고 계신 것 같다. 지금까지 남편은 열심히 일하고, 나는 열심히 봉사하고 있는 것을 보면….
고비를 잘 넘기고 본당 생활을 하던 중, 주일학교 교사를 뽑는다는 공지를 봤다. 막 새로 부임하신 신부님은 “지원자도 없고 새로 오셔서 신자 파악도 안 되니 가정방문을 하겠다”고 하셨다. 수녀님과 구역별 방문을 다니시다가 우리 집에 오셨는데, 나를 딱 보시더니 주일학교 초등부 교사를 권하셨다. 순간 ‘헉’ 놀랐다. 열심히 봉사하겠다고 주님께 기도드린 지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꿈이었던 나는 “네”라고 대답했다. 내가 맡은 학년은 3학년 첫영성체 교리반이었다. 그때부터 시작된 주일학교 교리교사를 9년 반 동안 했다. 10년을 채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지만, 하느님께서 주신 봉사 기회를 보람되게 체험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