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예수회 신학자 알로이스 그릴마이어 추기경(1910~1998)이 쓴 「교부들의 그리스도론」은 신앙고백문이 확립되기까지의 과정,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교부들의 분석과 논증을 종합한 책으로 현대 그리스도론의 고전이자 표준으로 평가된다. 이 책은 성경의 증언에서부터 칼케돈공의회까지의 그리스도론을 다룬다. 무엇보다 교부들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인간적 요소를 구분하면서도 단일한 위격 안에 있는 것으로 이해했는지 분석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그릴마이어 추기경의 여러 학문적 업적 가운데 기념비적 대작인 「교회 신앙 안의 예수 그리스도」(Jesus der Christus im Glauben der Kirche·전 5권) 중 1권에 해당한다. 신학도와 신학 연구자들의 필독서였음에도 내용의 방대함과 난해함으로 우리말로 접하기가 어려웠다. 특히 그리스어·라틴어·영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독일어·스페인어를 섞어 저술했기에 협업이 필수적이었다. 김형수 신부(베드로·부산교구·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신정훈 신부(미카엘·서울대교구·독일 뮌헨교구 파견), 안소근 수녀(실비아·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최대환 신부(요한 세례자·의정부교구·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허규 신부(베네딕토·서울대교구·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등 역자들의 작업이 시선을 끄는 이유다. 이들의 협업은 교의신학·고대 철학·성서학을 전공한 서울·부산·의정부교구 등 여러 교구 사제들과 수도자가 한데 모여 학제 간 교류를 통해 각자의 이해를 확장하는 과정으로도 뜻깊다.
2019년 11월 3일 첫 모임으로 번역을 진행한 역자들은 만 3년 동안 103차례의 밀도 있는 윤독 작업 끝에 한국어책을 내놓았다. 각자 맡은 분량을 초역하고 미리 검토한 후 언어적인 부분 등을 다듬고, 함께 모여 다시 내용을 보는 형식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어떤 때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모여 윤독 시간을 가졌다. 방학 기간에도 예외는 없었다.
인터뷰를 위해 한자리에 모인 번역자들은 “그만큼 번역 작업 자체가 함께 배우고 나누는 풍요로운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최대환 신부는 “저희가 할 수 있는 만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사드린다”며 “그리스도론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신학도들에게 꼭 필요한 책을 내놓았다는 점이 보람”이라고 말했다.
원문이 어려운 점은 처음부터 안고 가야 할 문제였으나 그리스어, 라틴어 등 고전어의 의미 해석이 쉽지 않은 것은 큰 부담이었다. 번역 과정에서 특별히 더 고심한 것은 용어였다. ‘원문 용어를 어떻게 우리말로 쓸 것인가’는 늘 부딪히는 난제였는데, 이때는 각 내용에 좀 더 관련된 전공자들 의견을 따르는 식으로 정리했다.
“교의를 정립하기 위해 쏟은 교부들의 에너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자 했던 간절함과 열렬함을 느끼면서 교회의 힘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고 말한 이들은 “그리스도론의 시작과 발전 과정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 책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신정훈 신부는 “‘내가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라는 질문은 신앙인들이라면 천착할 수밖에 없는 과제”라며 “이 책은 이 물음으로부터 시작해서 한국인 심성에 따른 그리스도상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밝혔다. 역자들은 “각 교부가 어떠한 배경에서 자신의 그리스도론을 발전시켰는지 파악하는 것이 흥미롭다”며 “천천히 읽어볼 것”을 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