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쁜 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 세상은 아주 어지럽습니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시작된 전쟁은 이미 2년을 넘겼지만 아직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또 작년 10월에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역시 계속 수렁 속에 빠져드는 것 같습니다.
성 요한 23세 교황이 1963년에 반포한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에서 ‘원자력을 자랑하는 현대에서는 전쟁이, 침해당한 권리를 회복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라고 하는 것은 이미 불합리하다’라고 한 말씀이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이번 주 소개할 교회 음악은 전쟁의 고통과 아픔에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바로크 시대 독일 작곡가 요한 카스파르 케를(Johann Caspar Kerll, 1627-1693)이 쓴 ‘빈 포위의 고통을 위로하는 미사’(Missa in fletu solatium obsidionis Viennensis)이지요. 빈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였지만 국경에서 가깝기 때문에 헝가리나 오스만 제국에게 여러 차례 공격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빈에 가보면 중심부의 구시가지를 둘러싼 둥근 원 형태의 거리가 있습니다. ‘링슈트라세’(Ringstraße)라 부르는 이 거리는 19세기 중반에 기존의 성벽을 허물고 조성한 것으로, 지금은 이 도로를 따라 국립 오페라 극장과 시청 등 아름다운 건물이 즐비하지만, 본래는 빈이 성곽 도시였음을 보여주는 흔적입니다.
1683년 7월 오스만 제국 군대가 빈을 포위했습니다. 1529년에 이어 두 번째 공격이었습니다. 20만 명이 넘는 군대가 대치한 이 전투는 쇠퇴하기 시작한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몸부림이며, 서양 역사에도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었습니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불에 타기 쉬운 목조 건물을 대거 철거(이때 빈 최초의 오페라 극장도 철거됐습니다)하는 등 결사 항전 태세를 취했고, 오스만 군대는 장기전을 노리며 빈을 포위했습니다. 두 달에 걸친 공방전 끝에 빈 성벽이 무너지며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한 9월 초, 폴란드를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온 구원군이 당도하면서 빈은 극적으로 함락을 면했습니다. 이 기간 빈 사람들은 굶주림과 공포에 시달렸는데, 지금도 빈에서는 아이가 말썽을 피우거나 떼를 쓰면 ‘문밖에 튀르크 군대가 왔다’면서 겁을 준다고 하네요.
당시 황실 오르간 연주자로 이 모든 과정을 직접 경험한 케를은 오스만 군대가 물러간 후 이를 회고하는 미사곡을 썼습니다. 전쟁의 공포를 표현하려는 듯 미사곡의 분위기는 어둡고 울적하며, ‘대영광송’(Gloria)과 ‘신앙 고백’(Credo) 끝에 있는 ‘아멘’은 당대 음악에서 보기 힘든 극단적인 반음계로 비통한 마음을 표현합니다.
바흐나 헨델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던 위대한 작곡가가 주님께 직접 겪은 전쟁의 아픔을 고하는 듯한 이 미사곡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글 _ 이준형 프란치스코(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