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고립 아닌 고립에 처한 선원들의 발 되어 주길”

박주헌
입력일 2024-06-24 수정일 2024-06-26 발행일 2024-06-30 제 3399호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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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선원 위해 버스 마련한 인천 해양사목부 김현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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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신부가 6월 21일 인천 답동주교좌성당 굴리엘모 공동사제관 앞에 세워진 교구 해양사목부 미니버스 앞에서 버스 키를 들고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있다. 버스의 파도 치는 파란 무늬는 이현우 신부가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 ‘파도와 싸우는 선원들의 노고’라는 의미가 담겼다. 사진 박주헌 기자

“인천항에 정박해도 뭍으로 나올 엄두를 못 내는 외국인 어선원들을 위한 ‘발’을 마련해 주고 싶었어요.”

인천교구 해양사목부 부국장 김현우(바오로) 신부는 이처럼 “입항한 외국인 선원들이 ‘또 하나의 감옥’일 수 있는 배 안을 벗어나 사람과 땅의 온기를 느끼길 바란다”는 진심으로 지난 5월 거금의 자비를 털어 25인승 미니버스를 구매해 교구 법인 명의로 기증했다.

버스 구매 비용 4800만 원은 김 신부가 본당 성령기도회, 피정 강의, 해외 성령 세미나 등을 다니며 모은 강사료와 유튜브 수익금을 합쳐 마련됐다. 산 넘고 물 건너 강연을 다니고 바쁜 사목 활동 틈틈이 영상을 찍고 편집했던 노고가 아깝지는 않았을까. 김 신부는 호주에 10년간 파견됐던 시절을 떠올리며 “고립이라는 힘겨움을 외국인 선원들만큼 잘 아는 같은 이방인 출신으로서 그저 ‘필요한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별히 버스가 ‘필요한 도움’이었던 이유는 뭘까. 김 신부는 “배에 있는 선원들이 외출하거나 고국에 쉬러 갈 수 있도록 공항까지 태워주는 셔틀버스로 쓸 것”이라고 답했다. 선원들은 오랜 기간 배에서 생활하기에 대형 캐리어 하나로도 모자랄 만큼 짐이 많다. “승합차로 태워주던 예전에는 장정 8명만으로 콩나물시루가 됐고, 짐까지 실으면 3명이 타기도 벅찼다”고 김 신부는 회상했다.

선원들은 항구를 벗어나려면 혼자 짐을 들고 오롯이 1시간을 걸어야 인천항 입구에 닿을 수 있다. 똑같이 무거운 짐 진 동료의 손을 빌릴 수도 없다. 김 신부는 “그들을 실어 나를 셔틀도 다니지 않을뿐더러, 복잡한 통행 절차를 거치지 않는 한 택시 등 차량이 항구 안으로 들어올 수도 없다”고 말을 이었다.

“원래 항해 정박을 하면 선원들이 무료로 셔틀을 타고 외출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한국은 선장과 대리점이 연락해 돈을 내야 나올 수 있죠. 한 푼 한 푼이 소중한 선원들인지라 돈 때문에 외출을 단념하는데, 그마저도 잘 운영되지 않아요.”

항구에서 바깥 출입 어려운 현실 보고
사재 털어 구입한 버스 교구에 기증
세상과 선원들 잇는 다리 역할 기대

그렇게 선원들은 ‘세상 한복판의 단절’을 감내하게 된다. 낮이면 생동하고 밤이면 불빛에 일렁이는 도시를 코앞에 두고도 무인도에 갇힌 듯 세상, 가족, 땅의 숨결을 그리워해야 한다. “업무에 집중하라는 핑계로 선내 와이파이도 켜주지 않는 선장도 있다”고 김 신부는 전했다.

그런 김 신부에게는 “선원들 안에 계신, 똑같이 갇히신 예수님을 위로하고 싶다”는 진심뿐이다.

“‘너희는 …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주었다’(마태 25,35~36)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단절되신 예수님을 섬기는 기쁨을 충만히 받고 있기에 저는 어떤 헌신이든 아깝지 않아요.”

교구 이주사목부 부국장이기도 한 김 신부. 그는 끝으로 “이주사목부에서 운영하는 미등록 이주민 어린이집 아이들과 부모들도 버스에 태우고 성지순례, 나들이를 가보고 싶다”며, 사람들 속에서도 단절된 어선원과 이주민들에게 버스가 세상과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주길 꿈꿨다.

“우리 곁에 있음에도 보이지 않는 이 사람들과 함께하는 데서 더없는 보람을 느껴요. 앞으로 버스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니는 순명의 마음으로 사목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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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 신부가 미니버스 운전석에 앉아 손을 흔들고 있다. 김 신부는 “배에 발이 묶인 선원들이 자유롭게 외출하고 고국에서 편히 쉬고 오길 바란다”며 “단절된 그들을 위해 버스가 찾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사진 박주헌 기자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