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년 동안 몇몇 가톨릭 전문가들은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교하며 꽤 괜찮은 삶을 살아왔다. 두 교황을 비교하며 이들은 교회 안에 분리와 분열, 두통을 조장하며 전선의 각을 세웠다. 이런 일을 조장하는 부류들에게 필자는 로마 동쪽에 있는 수비아코에 회개의 순례를 다녀오라고 제안하고 싶다. 여기서 두 교황에 대한 편견을 깨고 영혼의 정화도 이룰 수 있을 듯하다.
수비아코는 아페니니 산맥 끝자락 아니에네 강변에 있다. 6세기 이탈리아 귀족 출신인 노르치아의 베네딕토 성인은 무너져 가는 세상을 피해 여기에서 안식처를 찾았다. 전승에 따르면, 베네딕토 성인은 수비아코의 한 동굴에서 3년 동안 은수자로 살았다. 그리고 남부 몬테 카시노로 이동하기 전까지 수비아코에 13개의 수도원을 설립했다.
500년 후, 베네딕도회 수도승들은 그가 은거하던 한 동굴에 수도원을 지어 그를 기념하고자 했다. 바로 ‘거룩한 동굴’(Sacro Speco)이다. 이 수도원에는 두 개의 교회가 세워졌고 여러 개의 경당도 있다.
1223년 수도원의 한 경당 제대 축복식이 열렸는데, 베네딕도회 수도승들은 당시 추기경단 단장이자 훗날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이 된 우골리니 디 콘티 추기경을 주례자로 초대했다. 초대에 응한 디 콘티 추기경은 특별한 손님을 대동했다. 당시 42세의 신비가이자 시인이며 아시시의 프란치스코회라는 새로운 수도회를 설립한 인물이었다. 프란치스코 성인과 디 콘티 추기경은 친구 사이였고, 1228년 프란치스코 선종 2년 만에 그를 성인으로 선포했다.
프란치스코의 수비아코 방문을 기념해서 한 예술가가 경당 벽에 프란치스코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프란치스코가 살아있을 때 그림이었기 때문에 후광은 없다. 또 프란치스코가 말년에 겪었던 오상도 없다. 한쪽 눈에는 그가 중동 여행 중 앓았던 결막염을 치료받았던 것을 표현하듯 꿰맨 자국이 있다.
이 프레스코화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살아있을 때 그린 것이라 큰 의미가 있다. 필자는 최근 이 그림을 오래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한 월요일 아침이었는데,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 수도원에서는 이 그림 복제본을 팔았는데, 하나 사서 당직을 서던 한 사제에게 축복을 받았다. 친절한 이분은 이탈리아 출신의 베네딕도회 마우리치오 신부였다.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프란치스코 성인의 그림을 800년 넘게 베네딕토 성인의 후예들이 보존하고 보호하는 것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거룩한 동굴은 가톨릭교회의 삶에서 베네딕토 성인과 프란치스코 성인의 연관성이 뼈에 새겨져 있을 만큼 불가분하고 영원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수도승으로서 또 사목자로서 베네딕토 성인과 프란치스코 성인의 타고난 소질은 다르다. 베네딕토 성인은 신앙을 보존하고 지키는 쪽에 주력했고 프란치스코 성인은 신앙을 세상에 전하기 위한 혁신과 실험에 집중했다. 영국의 작가 체스터턴은 “베네딕토가 모아 놓은 것을 프란치스코가 퍼트려 놓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신앙이 퍼지기 위해서는 먼저 보존돼야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보존한다는 것은 세상에 알리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프란치스코 없는 베네딕토는 불완전하고 베네딕토 없는 프란치스코는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두 성인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영감을 두 성인과 같은 이름을 쓰는 두 교황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맞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에 비해 많은 방면에서 보수적이었다. 가톨릭교회의 관점에서 우리는 반대가 아니라 성취를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07년 이탈리아 벨루노-펠트레·트레비소교구 사제들에게 가톨릭교회는 전통과 같은 것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가톨릭교회는 배제가 아니라 통합의 종교라고 밝혔다.
물론 가톨릭교회에 라이벌 그룹이 있고, 각 그룹의 수장이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이라는 것을 부인하진 않겠다. 이는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각 그룹이 주장하는 것에는 가톨릭교회의 본질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 둘 다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고 논란의 여지도 있지만, 몇몇 논란거리들은 각 편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베네딕토와 프란치스코는 가톨릭교회 영성에서 쌍둥이처럼 얽혀 있고, 많은 방면에서 다르지만 상대가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두 성인이나 두 교황을 갈라놓으려는 시도는 결국 둘을 망치게 한다.
간략하면, 이것이 바로 수비아코에서 배우는 교훈이다. 작은 성지이지만 수비아코는 오늘날 가톨릭교회 안에서 생기는 분열의 목소리를 아주 잘 빨아들일 수 있다.
글 _ 존 알렌 주니어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집장이다. 교황청과 교회에 관한 베테랑 기자로, 그동안 9권의 책을 냈다. NCR의 바티칸 특파원으로 16년 동안 활동했으며 보스턴글로브와 뉴욕 타임스, CNN, NPR, 더 태블릿 등에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