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로마 프로축구팀의 팬들은 요즘 기분이 언짢다. 팀의 성적이 부진한 것도 이유도 있지만 미국 텍사스 출신의 구단주 댄 프리드킨과 그의 아들 라이언 프리드킨의 부실한 팀 운영에 더 큰 불만을 느끼고 있다. 새 시즌이 시작한 지 4게임 만에 구단의 레전드 선수였던 다니엘 데로시 감독이 인정사정없이 해고 되자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열혈 팬들은 감독이 해고되고 난 후 첫 홈게임 전반전을 보이콧했고, 이후 데로시 감독의 이름을 외치며 축구장에 들어섰다. 구단 인수 후 구단에 10억 달러(1조3200억 원)를 투자한 프리드킨 가문이 바란 것은 이것이 아니었다. 프리드킨 가문은 새 구장을 짓고 마케팅에 큰돈을 투자했지만, 이런 투자가 성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최근 평생 AS 로마의 팬인 이웃이 내게 미국인으로서 이 사태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프리드킨 가문에게 AS 로마는 미국의 시카고 컵스(미국 프로야구팀)와 같다. 열성적인 팬층이 확고한 팀으로, 팀이 이기든 지든 팬들은 구장을 가득 채우고 TV 중계를 보며 응원 도구를 구매한다.
이런 사실은 왜 이 두 팀이 가장 가치 있는 프로팀 리스트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시카고 컵스 116년 전 딱 한 번 월드시리즈를 우승했고, AS 로마는 2001년 이후 우승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만일 성적이 좋지 않은데도 팬들이 경기장을 찾는다면, 더 좋은 성적을 낼 필요가 있을까? 이웃과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세상에나! 지금 교황청 이야기를 하고 있었네!”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사실 현대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큰 아이러니는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가톨릭신자들이 넘쳐나고 이들은 교황이 요청하면 언제나 봉사할 준비가 돼 있는데 이들은 교회개혁의 주요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25년 동안 교황청을 취재하면서 이런 일을 계속해서 경험해 왔다.
교황청에는 누군가 해야 할 어려운 일들이 있다. 재무와 성직자 성추문, 커뮤니케이션, 인사 관리 등등 말이다. 교황청은 각 분야에 재능있는 인재를 채용해 배치하지만, 계속해서 이들이 업무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자원과 지원, 권위를 넘기지는 않는다.
아주 많은 예 중에 작은 것 하나를 들자면, 몇 년 전 교황청은 교황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로 천명한 어느 민감한 일을 처리하도록 어느 평신도 전문가를 채용했는데, 교황청은 이 직원의 출입증 발급에 6개월이 걸렸다. 결국 이 직원은 지쳐 쓰러져, 현안을 해결하지 못했다. 그리고 교황청 고위 관료는 새로운 사람을 불러들였다. 이 일을 할 사람은 많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때 일했던 교황청 대변인 호아킨 나바로 발스 이후로 교황청 대변인들을 그 직책에 임명되기 전부터 잘 알고 지냈다. 그들은 놀라울 정도로 똑똑하고 재능이 있는 전문가들이었으며 진실하고 헌신적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해내야 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일을 맡았다.
현재 상황으로는 교황청 대변인은 교황을 만날 기회가 극도로 제한돼 있고, 주요한 사항을 결정하는 자리에는 절대 들어가지 못하며 민감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도 답을 얻으려면 층층의 관료들을 거쳐야 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커뮤니케이션에 관해 쥐꼬리만 한 지식을 가진 이라도 그 기관의 얼굴 노릇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교황청 대변인들에게 왜 그 일을 맡았느냐고 물어봤다. 이들은 모두 살짝 다르지만, 같은 답을 했다. 교황이 요청하는데 따라야 했다는 것이다. 친구들인 이들의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내 의견은 다르다. 이들은 자신의 일을 합당하게 할 수 있도록 체계가 잡힐 때까지 교황의 제안을 거절하는 방법으로 교황에게 봉사해야 했다.
어느 교황이 성모님의 원죄 없으신 잉태를 교의로 선언한다고 했을 때, 가톨릭신자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교황은 최고의 교리교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황이 재무원에서 일을 하라고 하는 것은 결이 다르다. 자신이 맡은 일을 온전하게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상황이며, 이는 교회법에 따라 종교적으로 순명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 세계 가톨릭신자들, 특히 평신도 전문가들이 교황청 조직 체제가 변할 때까지 교황청에서 일하는 것을 거부해야 진정한 교황청 개혁이 이뤄질 것이다. 미봉책으로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상황을 덮어버리면 교황청의 기능을 제대로 할 어떤 치료책도 가능하지 않다.
달리 말하면, 가톨릭신자가 교황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큰 봉사는 언제나 ‘네’라고는 말하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이런 상태로는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 더 좋은 대답일 수 있다.
글 _ 존 알렌 주니어
교황청과 가톨릭교회 소식을 전하는 크럭스(Crux) 편집장이다. 교황청과 교회에 관한 베테랑 기자로, 그동안 9권의 책을 냈다. NCR의 바티칸 특파원으로 16년 동안 활동했으며 보스턴글로브와 뉴욕 타임스, CNN, NPR, 더 태블릿 등에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