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을 보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린 신부(新婦)가 가마를 타고 시집가는 길, 자신이 살던 익숙한 마을을 벗어나기 시작하면서 만감이 교차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가족과 부모님은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 ‘시댁 식구들과는 잘 지낼 수 있을까?’,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마음이 답답해 열어본 작은 창문 밖으로 낯선 풍경이 펼쳐지자, 어린 소녀의 눈가에는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갑니다.
TV 속에서나 있는 일인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면 저에게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오래 살던 고향, 저를 키워준 모본당을 떠나 첫 본당으로 부임했을 때의 일입니다. 이동할 본당에서 오신 분들의 차를 타고 환송 인사를 받으며 떠나는 차 안에서, 저는 이제 막 시집가는 어린 신부처럼 곧 다가올 일을 걱정하며 마음이 산란해졌습니다. 차창 밖으로 비치는 모든 것들이 슬픈 이별의 손짓을 건네는 것만 같아 속으로 연신 눈물을 삼켜댔지요. 하지만 그마저도 잠시, 방금 이별을 겪어 눈물 자국 남아있는 첫 본당 신자들의 어색한 환영 인사를 받으며, 저는 그렇게 정신없이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얼마 전 우리 교구 사제 서품식이 거행됐습니다. 아홉 분의 새 신부님들이 탄생한 기쁜 날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제 곧 익숙했던 삶의 자리를 이동해야 하는 어린 신부(神父)님들의 마음이 어떠할지를 잘 알기에 마음속으로 작은 응원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아울러 예수님의 이 말씀이 다시금 가슴에 울려 퍼졌습니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루카 4,43)
나그네처럼 떠나고 또 떠도는 것이 신부의 삶임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별할 때마다 마음을 정리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기만 합니다. 넘치게 받은 사랑을 돌려드리지 못해 죄송해서, 고운 정뿐만 아니라 미운 정에도 미련이 남아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시간이 아쉬워서, 마지막 짐에도 차마 마음은 다 넣지 못했습니다. 물론 또 시간이 흐르면 지난 것들은 잊히기 마련이겠지요. 그러나 지금도 우연히 옛 본당 근처를 지날 때면 웃으며 박진영씨의 이 노래를 흥얼거리곤 합니다. “니가 사는 그 집, 그 집이 내 집이었어야 해.”
약 한 달 전, 제가 살았던 ‘평화의 모후원’을 소개해드린 바 있습니다. ‘살았던’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지금 다른 집에서 이 글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갑작스러운 이사였던 탓에 이번에도 가슴 한구석에 진한 아쉬움이 남아있지만, 저의 마지막 ‘밀알 하나’ 글이 될 이 지면을 빌어 미처 다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남김없이 전해봅니다. 수녀님들, 어르신들, 그리고 모든 모후원 가족 여러분! 그동안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기도 안에서 만나요. “다시 만날 그날까지 안녕히!”
글 _ 김영철 요한 사도 신부(수원교구 장애인사목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