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이준형의 클래식순례] J. S. 바흐 칸타타 82번 <나는 만족합니다>

이승환
입력일 2025-01-17 10:38:28 수정일 2025-01-20 17:21:05 발행일 2025-01-26 제 3427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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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성탄 다음 40일째 되는 날인 2월 2일을 주님 봉헌 축일로 지냅니다. 성모님께서 유대교 율법대로 정결례를 치르고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봉헌한 일을 기념하는 날이자, 전례력으로는 성탄-공현 시기가 끝나는 날이기도 합니다.

전통적으로 이날 미사에서 사제는 세상의 빛인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초를 축복하며, 그래서 ‘성촉절’(聖燭節)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주님 봉헌 축일은 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축일이기에 유럽과 라틴 아메리카 여러 나라에서 이 축일을 기념하는 교회 예술이 꽃을 피웠고, 또 축제와 음식 전통도 생겨났습니다.

오늘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주님 봉헌 축일을 위해 쓴 칸타타인 82번 <나는 만족합니다>(Ich habe genug)를 소개합니다. 바흐는 라이프치히의 칸토르로 이주한 지 4년째 되는 해인 1727년, 주님 봉헌 축일을 위해 이 작품을 썼습니다.

이날 낭독하는 루카복음 2장 말씀은 성전에서 시메온이라는 노인이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 아기 예수님을 두 팔에 받아 안고 하느님을 찬미했다고 전합니다. 작가를 알 수 없는 칸타타 가사는 바로 이 이야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베이스 독창자는 아마도 시메온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당시 바흐는 독창 칸타타를 많이 썼는데, 어쩌면 당시 좋은 가수가 있었는지 혹은 곧 있을 <마태오 수난곡> 초연을 준비하면서 리허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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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트 더 헬더르 <찬미 기도를 올리는 시메온>, 헤이그 마우리츠호이스 미술관 소장

이 칸타타의 핵심 주제는 ‘죽음’입니다. 독실한 신앙인이자 어릴 때 부모를 모두 잃은 바흐에게 죽음은 아주 친숙한 존재이자, 주님과의 결합이 이뤄지는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여러 곡의 칸타타와 수난곡에서 이렇게 죽음을 열망하는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했는데, <나는 만족합니다>는 그 정점이라고 할 만합니다.

독창자(시메온)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난 삶을 회고하고(첫 아리아), 자장가 형식을 통해 현세의 모든 괴로움과 덧없음을 뒤로 하고 잠(죽음)을 청하며(두 번째 아리아), 행복한 마음으로 영원한 삶을 기다립니다(세 번째 아리아). 그러면서 시메온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제3자로 바뀝니다. 개인의 감정이 보편적인 차원으로, 과거는 현재로 승화한 것이지요. 바흐는 오보에로 독창을 포근하게 감싸 깊은 감동을 이끌어냈습니다.

<나는 만족합니다>는 지금도 200여 곡의 바흐 교회 칸타타 중 가장 널리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로 꼽히는데, 바흐와 집안 식구들도 아끼고 높이 평가했던 것 같습니다. 바흐는 몇 년 후 소프라노-플루트를 위한 편곡을 만드는 등 거듭 연주했고, 아내인 안나 막달레나(Anna Magdalena)는 자신의 음악 노트에 두 곡의 아리아를 필사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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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이준형 프란치스코(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