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성소 ‘종자 싹’ 보관소
Laos, 2011.
고산족 마을 어디서나 보이는 이 중심 자리엔
한 생을 마친 오백 년 된 고목이 솟아 있는데
그 머리에는 다음 생을 이어갈 종자 싹이 트고 있다.
짐승들이 종자를 먹어치울까 봐 그리했겠지만 내겐
희망의 싹을 모시는 종묘사직의 성소처럼 느껴진다.
결실은 아래로 고르게 나눠져야 하지만
고귀한 종자는 높은 곳에 두어야 한다.
높은 곳은 더 춥고 가난하고 고독할지라도
빛나는 태양과 별들이 그를 품고 단련해주는 곳.
그리하여 마침내 낮은 땅에 씨뿌려져
대를 이어가는 새 희망이 되는 것이리라.
- 박노해 사진 에세이 「다른 길」 수록작
글·사진 _ 박노해 가스파르
※ 서울 종로구 통의동 ‘라 카페 갤러리’(02-379-1975)에서 박노해 시인 상설 사진전을 무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