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주의 창

사회생활의 근본 가치들

이주연
입력일 2025-03-05 09:06:42 수정일 2025-03-05 09:06:42 발행일 2025-03-09 제 3432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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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을 찾아갈 때 갑자기 용감해지는 경우가 있다. 아는 곳도 아닌데, 그냥 계속 가면 목적지가 나올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이다. 어쩌다 한 번 그 예감이 맞으면 행복한 일이겠으나, 대부분은 지나친 길을 되돌아 나올 때가 많다. 목적지도 잃어버리고, 목적지로 가는 길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를 떠올려 보면 운전할 때 빠뜨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었다. 두껍고 묵직한 지도 하나만 있으면 가보지 않은 장소를 찾아갈 때도 자신 있었다. 요즘은 내비게이션이 그 역할을 하지만, 지도를 잘 보는 사람이 능력자로 인정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계엄 선포로부터 시작하여 탄핵과 체포 구금, 헌법재판소, 태극기와 성조기, 응원봉, 남태령 대첩, 키세스 부대, 서부지법, 찬성과 반대…. 들려오는 소리는 많은데, 담을 말이 무엇인지를 가늠하기 어려운 시절이다. 우리는 이렇게 또다시 가르고 갈라서 적이 되어 살아야 하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예수님께서 경고하셨던 그날이 오기라도 했단 말인가?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제부터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루카 12,51-53)

이처럼 혼란의 시대에 우리에게 그 길을 알려주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이 혼란의 시기에 우리는 무엇을 기준 삼아 살아야 할까?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 4항은 “현대 세계의 상황에서 사제들의 설교는 매우 어려운 일이어서, 듣는 사람들이 마음을 더욱 적절하게 움직이려면, 하느님의 말씀을 일반적으로나 추상적으로만 설명할 것이 아니라, 복음의 영원한 진리를 구체적인 생활 환경에 적응시켜 설명하여야 한다”고 밝힌다. 이에 가톨릭 사회교리의 중요한 내용인 사회생활의 근본 가치들을 상기하면서 우리의 길을 찾고자 한다.

첫째는 진리에 입각하여야 한다. 진리를 가장한 수많은 말들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예수님을 고발했던 바리사이들처럼, 나봇의 포도밭을 빼앗기 위해 거짓을 동원한 이제벨처럼 사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 양 선포하는 일들이 일어난다면 우리의 근본 가치를 송두리째 저버리는 것이다.

둘째는 자유이다. 인간존엄성의 탁월한 표징인 자유를 행사할 권리는 모든 인간에게 부여된 하느님의 선물이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가치로서 ‘행사할 수 있는 권리로서의 자유’와 도덕과 양심에 따라 ‘거부할 수 있는 자유’는 인간다운 사회생활을 이끄는 귀중한 가치이다.

다음은 정의이다. 교회는 정의를 ‘마땅히 하느님께 드릴 것을 드리고 이웃에게 주어야 할 것을 이웃에게 주려는 지속적이고 확고한 의지’라고 한다. 교회는 ‘가장 고전적인 정의의 형태인 교환 정의, 분배정의, 그리고 법적 정의에 대한 존중’을 요구한다. 누구의 편이어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을 가르는 문제이다. 옳은 것은 무엇보다도 도덕적이어야 한다.

마지막 가치는 사랑이다. ‘사랑은 정의를 전제로 하는 동시에 정의를 초월한다. 정의는 사랑 안에서 완성되어야 한다.’ 또한 교회는 ‘개별 행동을 재촉하는 사랑’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 사랑’을 가르친다. 고통스럽고 버림받은 이들을 저버리지 않고 손을 내미는 것이 개별 행동을 재촉하는 사랑이라면, 그가 처한 처지를 만들어 내는 사회적 요인을 제거하는 것은 사회적 정치적 사랑이다.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사회생활의 근본 가치들을 고려하여 우리가 처한 사회생활의 면면을 살핀다면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가야 할지가 선명하게 떠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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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_ 나승구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서울대교구 제6 도봉-강북지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