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된 어느 날, 그러니까 지금은 마흔이 다 되어가는 우리 딸이 고3이었던 날, 나는 당시 수원교구의 성당에 다니고 있었다. 새벽 미사에 다녀온 딸이 아침을 먹으며 호들갑스럽게 내게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오늘 우리 본당 신부님 어디 가셨는지 다른 신부님이 오셨어. 이탈리아 사람이래. 그분은 성남시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밥 나눔을 하고 계신다고 자신을 소개하셨어. 그러더니 어눌한 한국어로 강론을 짧게 하시는 거야. 이렇게. ‘여러분 사람들은 노숙자들에게 묻습니다. 왜 술 먹습니까? 왜 일하지 않습니까? 왜 희망 안 가집니까? 하고요. 그러나 나도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건 꼭 그들에게만 해당하는 질문일까요?”
나는 이십여 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도 그 강론을 기억한다. 내가 들은 – 실은 딸이 들은 - 강론 중 세 손가락 안에 꼽히게 감동적인 말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분이 운영하시는 곳이 ‘안나의 집’이었다고 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신부님은 30세 때 한국에 오셔서 성남시의 노숙인들에게 밥을 제공하시는 일을 40년이 다 되도록 지금도 하고 계신다. 그 후로 바로 서울로 이사를 가느라 안나의 집에 찾아가지 못했지만, 특별한 날이 오면 나는 그분과 노숙자들을 기억했고 그곳에 약간의 봉헌을 했다. 그리고 딸과 그분 이야기를 더 나눌 일은 없었다. 그렇게 또 몇 년이 지나가고 딸은 유럽으로 성지 순례를 떠났다. 다녀와 그녀가 말했다.
“엄마 인천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뜨자마자 미친 듯이 흔들렸어.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나도 너무 무서웠어. 이러다가 죽는 거구나 싶어 기도했어. ‘하느님 제가 지금 죽는다면 죽으면서 받는 이 고통을 안나의 집과 그 이탈리아 출신 김하종 신부님께 봉헌하니 받으세요’ 그랬는데, 그 순간 비행기가 흔들림을 딱 멈췄어. 이거 진짜야.”
딸은 내 얼굴이 영 마뜩잖아 보였는지, 진짜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순간 몇 가지 생각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만일 죽는 일이 있다면 나도 몇 번 봉헌하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는 아이들, 우리나라의 평화, 북한의 해방 같은 말들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 대학을 막 졸업한 젊은이인 딸이 자신의 목숨이 죽는다 치고 그걸 안나의 집을 위해 봉헌한다니 그게 더 놀라웠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아니야 믿어. 집채만 한 비행기가 흔들림을 멈출 만해. 네 착한 마음에 하느님이 감동받으셨을 것 같아. 너무나 대견하구나” 하고…. 그리고 이상하게도 힘들거나 희망이 사라진다고 느낄 때,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아니면 그냥 속상해서 술을 한 잔 마실 때 이상하게 내가 바로 옆에서 들은 듯이 그분의 말이 생각났다. “왜 술 먹습니까? 왜 일하지 않습니까? 왜 희망 가지지 않습니까?” 신비했다.
이즈음 뒤숭숭하다 못해 황당한 시국 때문에 나는 거의 글을 못 쓰고 있었다. 책들도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나라가 집채만 한 비행기처럼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다. 하필이면 이런 때 김하종 신부님과 안나의 집 생각이 났다. 찾아보니 다행히 그분의 저서가 있었다. 「사랑이 밥 먹여준다」였다. 상한 음식만 먹고 있다가 모처럼 신선한 채소를 섭취한 것처럼, 내 영혼은 책 속으로 바로 빨려 들어갔다. 집채만 한 비행기처럼 난기류를 만나 흔들리고 있는 이 나라를 위해 나도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하느님, 우리가 받는 이 고통을 가난하고 희망 없는 사람들, 그분들을 위해 애쓰시는 안나의 집 여러분을 위해 봉헌합니다”하고…. 그러고 보니 또한 신비였다. 사제 한 사람의 짧은 강론이 엄중하다는 것이.
글 _ 공지영 마리아(소설가)